그녀가 정말 좋아할만한 이미지의 소녀였는지는 지금도 의심스럽다. 단순히 긴 머리에 짧은 치마의 소녀였다는 것 외에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고 또 당시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즉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아니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그녀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를 만날 수 있는 토요일밤을 애타게 기다리곤 하였다. 코 밑의 잔털이 제법 굵어지기 시작하던… 사춘기로 접어 들던 당시 어느 종교 서클에서 그녀를 보았고,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녀는 교복을 연상시키는 체크무늬 칼라에 흰 부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정오의 햇빛에 반사된 흰 부라우스는 너무도 눈부셨고 지상의 존재와는 구별되는, 어떤 성스러움 마저 풍겨져 왔다.
성숙한 여인도 어린 여자애도 아닌, 가슴이 막 봉긋하게 부풀기 시작하는 십 오륙세 소녀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신선함때문이었겠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신비함을 머금은 모성애같은 것이 느껴지는 아이였다. 물론 그녀에게서 풍겨져 오는 신비함은 남과 뚜렷히 구별되는 미모도 한 몫했겠지만, 수줍은 사춘기 소년이었던 나는 그녀를 먼 발치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고, 어쩌다 길에서 마주친 다음에는 밤마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나를 거리로 내몰았고 또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해도 좋았다. 밤공기의 음습한 습기, 거리의 네온사인… 하늘에 반짝이는 별 조차 이세상은 온통 그녀의 냄새, 그녀의 파편으로 가득했고 그녀가 이세상에 존재한다 것 자체 만으로 세상은 아름다웠고, 산다는 것은 생기… 희망 그 자체였다. 물론 그것은 첫 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일방적이었고 무조건적인 감정이었지만 일생을 살아오면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그러한 감정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루처럼 꺼져버릴 물거품의 환상이었지만 그것은 정말 흠없고도 지극히 정신적이었던, 일생의 가장 순수하고도 매혹적인 한 때였다. 지금도 가끔 유난히 청명하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볼 때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붕 뜨는 환상과 함께 쓴웃음을 짓곤 하는데, 아마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등을 들을 때가 그 때의 감정과 흡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근대 낭만주의를 얘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러, 1873-1943)라고 할 수 있다. 음악(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한 소절 정도는 기억하고 있고, 그 서늘하고도 아련한 피아노의 연탄음 속에 붕 뜨는 마음으로 뭉개구름 처럼 추억과 낭만의 세계로 젖어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의 작품은 소시민들의 어둡고 불안한 의식을 대변해 주고 있으며, 불안 가운데서 움틀 거리는 낭만의 파편이 아련하도록 가슴에 파고드는, 미묘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낭만의 승화라고나할까, 극한대의 고통을 견뎌내는 듯… 강렬하고 찬연한 선율이 사람을 압도시키고 있다.
우울한 都市서정에 더하여 야성미까지 넘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주는 감동은 특별하다. 특히 찬기가 으스스 도는 북방의 서정, 북극 전원의 우수, 폭발적인 야성미… 짙은 어둠 속의 일말의 불안감, 힘찬 야성, 그리고 서정미까지 겸비한 것이 바로 라프마니노프의 음악의 매력이다.
라프마니노프의 가장 유명한 곡은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그러나 3번도 예술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며 ‘파가니니주제에 의한 광시곡’도 이들 못지 않게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8번째 변주곡이야 말로 진정한 라프마니노프의 음악… 서정과 우수, 환상이 가득한 낭만적인 음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곡이다.
역사상 많은 작곡가들이 파가니니 작품을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특히 라프마니노프의 ‘파가니니주제에 의한 광시곡(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24개 변주곡’ 중 18번째 변주곡 D flat Major이 유명하다. 이 곡은 빠른 템포로 시작되는 1부(1-10)에 이어 느리고 서정적인 2부(11-18)에 속하는 마지막 곡으로 곡목은 모를지라도 모두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맑고 투명한 서정성이 무한한 광희에 젖게 하는 곡이다. 마치 날카롭게 곤두선 현대인들에게는 언제들어도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 첫 눈과 같은 광희에 젖게하는 곡이라고나할까.
고전 음악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성과 감성, 야성의 조화있는 균형미이다. 都市서정과 야성이 동시에 살아있는 라프마니노프의 음악이야말로 진정 어두운 도시를 살아가는 도시인의 음악, 온갖 너저분함 속을 헤치고 살아야 하는 도시인들에게 무한한 위로를 준다.
인간은 단순한 자극으로 낭만에 빠질 수 있는, 감정의 동물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라흐마니노프가 보여주는 음악 세계는 인간이 얼마나 낭만의 승화를 위한 극한대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존재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낭만으로 절망을 극복한20세기 마지막 낭만주의자…. 인생이 허무해지고, 현실이 삭막해 질때면 옛 추억의 언저리… 파도처럼 밀려오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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