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한국 선수단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폐막 하루를 앞둔 23일 열세번째 금메달을 사냥하며 올림픽 출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출전했던 1948년 런던 대회에서 역도 미들급의 김성집과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이 나란히 동메달을 따면서 올림픽 메달 레이스가 시작됐다.
금메달이 나온 건 그로부터 28년이 흐른 1976년 몬트리올 대회.
레슬링 남자 자유형 페더급에 나선 양정모가 마침내 한국의 금메달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했다.
한국의 금빛 퍼레이드가 본격 시작된 건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대회.
동서 냉전 여파로 1980년 모스크바 대회에 불참했던 한국은 LA 대회에서 `왕발’ 하형주와 안병근이 유도에서 두 차례 금맥을 뚫었다. 또 여자 양궁 개인종합에선 `신궁’ 서향순이 금빛 과녁을 맞춰 한국 양궁 전성기를 열어 젖혔다.
복싱 신준섭과 레슬링 김원기, 유인탁도 한국의 금메달 6개 사냥에 힘을 보탰다.
한국은 1988년 서울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역대 최고 성적인 종합 4위에 올랐다. 중국과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린 쾌거였다.
서울올림픽 성공 여세를 몰아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에서도 금메달 12개로 종합 7위를 했고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선 금메달 7개(종합 10위)로 세계 스포츠 10강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금메달 8개를 땄지만 종합 12위로 밀리면서 톱10 수성에 실패했다. 또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선 종합 9위(금메달 9개)로 세계 10위 재진입에 성공했지만 일본(금메달 16개)에 뒤져 1988년부터 유지해왔던 아시아 2인자 자리를 넘겨줬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열린 2008년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 한국의 목표는 금메달 10개를 따 톱10을 수성 하겠다는 `10-10’ 전략.
한국은 앞서 22일 태권도 여자 67㎏급에 출전한 황경선이 금메달을 추가하면서 10-10을 사실상 달성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은 한국은 23일 야구가 쿠바를 결승에서 꺾고 사상 처음 우승하는 `그라운드 기적’을 일으키고 태권도도 차동민이 남자 80㎏급 금메달로 네 종목 싹쓸이에 화룡점정을 찍어 13개로 종전 최다였던 12개 벽을 뛰어 넘었다.
100년을 넘은 한국 스포츠 역사를 새롭게 쓰는 순간이었다.
한국 수영사의 새 페이지를 장식한 `마린 보이’ 박태환과 유도의 `작은 거인’ 최민호, 역도의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 사재혁, 사격의 명사수 진종오, 배드민턴의 `황금 콤비’ 이용대-이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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