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작가 김 영갑의 그의 사진을 곁들인 수필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는 몇 년전 여름 한국에 나갔을 때, 교보문고에서 서서 읽다가 마음에 들어 사들고 나온 책이었다.
수필집이라면 유명인이라던가,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이 아니면 손이 가지 않기 마련인데,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유달리 원초적인 고독과 적막함, 그리움, 알수 없는 평화가 느껴지는 그의 사진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자기 애착, 지적인 과시나 허영심, 관념의 유희를 찾아 볼수 없는, 가난과 질병, 고독으로 점철되어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과 그가 추구하는 사진세계에 대해 진솔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군더더기 없는 그의 글 때문이기도 했었다.
김 영갑 이라는 사진작가는 제주도를 오르내리며 사진작업을 하던 중 섬에 홀려 사진에 미쳐 아예 제주에 정착하여 바닷가와 중간산, 한라산과 마라도 섬 곳곳,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들판과 구름, 억새 등을 사진으로 찍는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는 사진 작업은 ‘수행’이라 할만큼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친 것이었다. 어느 날 부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눌러야 할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제대로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을때, 3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게된다.
그는 일어나서 창고에 쌓여 곰팡이 꽃을 피우는 사진들을 위해, 폐교된 초등학교를 손수 개조해서 ‘김 영갑 갤러리 두모악’ 이라는 사진 갤러리를 만들었고, 예술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던 작가는 죽음을 기다리면서 삶의 끝에서야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얻는다.
그는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얻으려 했고, 자연 속을 보고 느끼고 깨달으며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다. 살다보면 찾아오는 슬픔, 분노, 두려움, 절망 그리고 힘든 상황을 극복 할 때마다 그는 자연의 품안에서 해답을 구하고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질서를 통해 지혜를 얻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어서 홀로 걸으며, 가끔씩 이름없는 섬에서 홀로 외로움 속에 며칠이고 자신을 내버려두면서 사진을 찍었던 그는 상업적인 연예인 누드집이 범람하는 이 세상에서 사진기로 그 만의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이었을지 모른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그가 발견한 것은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천국, ‘이어도’라고 한다. 그는 병이 깊어지며 사진을 찍지 못하면서,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 때가 간절히 그립다고 말한다. 그때는 몰랐었다고……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고……그리고……2005년 여름, 그는 그가 인생을 바친 사진들을 이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그는 저 세상에서도 바람을 가슴에 안고 이 세상에서는 볼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 들판을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마음이 한없이 외롭던 나날들에 그의 사진들과 글을 읽으면서 왜 그리 눈물이 났었는지 모른다. 섬에서 그렇게 헤매는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언뜻 발견했던 것은 왜 였을까……
그의 모든 것을 걸고 밥벌이도 되지 않는 사진 속에 그가 그토록 담으려했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움이었을까? 천국이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이 변해버리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라도 순간들을 영원 속에 붙들어 놓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그를 바다 바람 부는 들녘으로 오랜 세월 내몰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광기였을까? 열정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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