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중 교무 / 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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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이데아, 극락세계, 유토피아 이러한 개념들은 종교가나 철학가에서 지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하지만 누구나가 바라는 완벽한 세계, 그래서 마지막 종착지로 안주 하고 싶은 곳을 일컫는 말이다. 천국을 말하면 보통 하늘을 동경한다. 지상의 세계는 괴로움도 있고, 슬픔도 있고, 얻음도 있고 잃음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하늘을 그리워하고, 지금이 아닌 언젠가, 미래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천국의 세계는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동부에 갈 일이 있었다.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하늘 아래의 모습은 경이 그?자체였다. beautiful 이라는 단어에 이 멋진 장관을 담아내기엔 우리 인간의 언어가 너무도 작은. 끝없이 펼쳐진 canyon을 학교에서 배운 침식 작용으로 표현하기엔 이들의 장구한 세월 속의 노고가 너무도 대단한. 그 긴 시간, 쉬지 않고 모든 폭풍과 바람을 이겨 낸 저 결정체는 지금도 소리 없이 움직이고 변하고 있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는 순간! 아! 캄캄한 밤하늘에 수놓은 듯 촘촘히 박혀 있는 별들에 또 다시 말을 잊게 된다.
아! 천국이 여기로구나. 지금 내가 살아 있고 의식하는 순간은 천국의 조건을 모두 다 갖추고 있구나. 여기가 극락이로구나. 천국은 다른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숨 쉬고 발 딛고 서 있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우리가 의식할 수는 없지만, 가만히 조용히 앉아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이미 천국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텅 비어서 고요하지만 이 가운데 갖가지 조화를 만들어 내는 이 세상. 아 ! 지금 이 순간 텅 비어있는 이 허공과 허공 속을 소리와 파문과 색깔로 물들이는 이 순간이 바로 천국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지 않은가! 텅 비었기에 보이고, 들리고, 채우고, 버리고 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바닷가에서 산책을 하다보면 하늘을 닮은 바다 색깔의 영롱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하늘 아래 줄지어서 자유로이 나는 갈매기. 저 갈매기가 저렇게 날 수 있음은 이 순간이 천국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바탕이 텅 빈 허공이기 때문에, 하지만 완벽하게 비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공기가 있고 바람이 불기에 저 새들이 저렇게 날고 있지 않은가! 만약 하늘이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다면, 저런 경이가 가능 할까. 이렇듯 세상이 텅 빈 허공에 바탕 해 있다는 것은 천국의 첫 번째 조건이다.
저 들꽃을 보라. 아무도 돌보지 않고, 아무도 거름을 준적도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자신을 봐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렇게 없는 듯 한 땅에서 노랗고, 빨간, 물감으로는 도저히 따라할 수도 없는 신기하고 또 기적적인 색을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내지 않은가. 비단 꽃뿐만이 아니다. 세상 만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또 유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살아 있음으로 다른 생명의 바탕이 되어 준다. 이렇듯 서로가 서로에게 바탕이 되고 도움이 되는 세상 존재의 방식이 바로 천국의 두 번째 조건이다.
무한한 공기가 있고, 오늘을 지탱해서 살 수 있는 땅이 있고, 그리고 하루를 정리 할 수 있도록 해는 저녁이 되어 집에서 쉴 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저 멀리로 지고, 그 피로가 다 가시고 나면, 조용히 살며시 다시 세상을 밝히면서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게 해준다. 지구는 누가 천동설을 주장하던지, 지동설을 주장을 하던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저 묵묵하게 돌고 또 돌고 있다. 이것은 바로 텅 빈 듯 한 허공이 만들어 내는 신기하면서도 묘한 작용이다. 없는 듯 끊임없이 돌고 도는 이 세상의 이치가 바로 천국의 세 번째 조건이 아닐까.
새벽을 깨우는 아침 소리들이 있다. 고요하고 텅 빈 허공을 타고 오는 맑고 선명한 새 소리. 털커덩 하고 쓰레기를 차에 싣는 소리. 허공을 약간의 어둠으로 채운 새벽. 그 어슴푸레한 어둠을 조용하게 밀어내는 아침의 빛. 이 순간 고요히 정좌로 앉아 있으면 만상이 그대로 선명하기만 하다. 이런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지 못함은 바로 세상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천국의 모습을 보는 눈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천국의 아침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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