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우 법사(전 대불련 회장)
혹하면서 호기심이 발동되고, 이 유혹되는 마음은 자제력이 약한 경우에 더욱 치열해진다. 자제력이 약하다는 것은 평상심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약할 때 넘어지는 허약함이다. 그래서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면 저 인간 죽을 때가 가까워 온 모양이라고 한다. 근거없는 빈 말이 아니다. 때가 묻은 덕지덕지한 누더기 모습의 평상심이지만 이것만큼 고마운 마음은 없다.
이 때묻은 평상심 때문에 우리는 정신병을 앓지 않고 살아간다. 육신에 병이 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듯, 정신에 병이 생기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러나 병이 있다고 다 앓아누우랴! 우리에게는 정신의 허약함을 버티어주는 태연자약, 허허하면서도 넉넉함 같은 것들이 있지 않겠는가.
이런 것들은 다 적당히 살 줄 아는 사람들이 가지는 미덕이다. 도대체 적당히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강직하고 굳센 것 같아도 그 정신상태는 매우 허약해서 범상한 흔들림에도 안절부절하고 난리법석이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과 만났을 때 그들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한다. 필사적인 매달림을 통해 자기를 세워 일으키는 골수분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뭐든지 ‘필사적’이라는 것은 칭찬할 것이 못된다. 죽을 힘을 다한다는 것이 미친 모습이 아닌가.
어떤 주의나 주장이나 교리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왜 필사적으로 미친 듯이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단 한가지 이유! 보상받는다는 심리 때문이다. 신이 산다는 어떤 곳이 있고 그곳에 가기로 약속받는다는 식의 주의주장은 어떤 이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기 때문에 보상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일방통행적인 우월감으로 뽑힌 사람이라는 선민주의자로 만들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의 주동자들이 조계사라는 절간으로 피신처를 삼았다는 뉴스는 참 희한한 일이다. 구원이 없는 절집에 갔다니세상이 달라진 모양이다. 감옥이라는 큰 의지처가 있는데도 감옥외의 피신처를 찾는다는 것은 그들의 주의주장이 매우 사적인 수단을 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핍박과 고난이 많은 천국없는 현실을 달게 받고 극복하려는 공명정대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사적인 사람들에게는 말이 필요없다. 현장과 체험이 제일 중요한 요소다. 또한 체험은 신비스러운 것이 그 특징이다. 사적인 신비체험이 일반적인 ‘경험’으로 인정받는 것은 많은 시간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원래 불교는 느슨한 체계와 종잡기 힘든 가르침이 큰 흐름이다. 이 틈을 타서 신비주의적 체험을 주장하는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불경은 불자들에게 있어서조차 그 탁월성과 우수성이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되어 있다. 불경은 예시록이 아니며 석가모니 부처님은 선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신교에서 보이는 총체적인 귀의(믿음) 같은 것은 불교에서는 웃음거리가 된다. 구원이나 구제가 인간을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욕망을 더 부췬다는 것이다.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조차도 자유로운 것 하고는 거리가 한참 먼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것들은 다 ‘필사적인 믿음’으로 나아가는 종교의 속성을 차단하기 위한 성찰이라 할 것이다. 종교적 근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불교는 안전장치는 대단하다. 그러나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은 그래야만 진실된 것이기 때문이다.혹하는 유혹된 마음은 업을 촉발하고, 촉발된 업은 고통이 된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실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사적인 믿음의 대상이 되어서는 진실스럽지 못하다. 현존은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의존한다는 것은 파멸뿐이다.
이와 같이 근본적인 현존 사이에서 갈등없는 마음이 되어 자유로운 삶이 되자는 것이 불교신앙의 최고미덕인 ‘중도’의 원리인 것이다. 본래는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있는 것이 有爲이고, 본래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것은 無爲다. 다시 말하면 실존은 무위고 현존은 유위로서, 둘 다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통달할 때까지는 우리에게 갈등이 심하다. 이 한 여름을 당하여 이 근본갈등을 한번 녹여봄이 어떤가. 그래서 ‘적당히 행복하자.’ 적당히라는 말은 불교의 중도사상이 담긴 언어다. 특히 한국인은 적당한 것을 좋아한다. 적당히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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