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삼 감독이 삼국지를 소재로 한 영화 ‘적벽대전’ 2부작의 첫 편이 지난주 중국과 한국 등지에서 화려하게 개봉됐다. 중국 정부가 아시아영화 사상 최대 규모인 8,000만 달러를 들인 영화로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자국 문화를 전세계에 소개하고자 삼국지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인들도 아마 연말쯤에는 극장에서 삼국지의 세계를 첫 대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삼국지는 적지 않은 미국 청소년들에게 이미 알려진 이야기다. 일본 비디오게임덕분이다. ‘Dynasty Warriors’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무려 900만부가 팔렸는데 이를 통해 삼국지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 영어로 완역한 삼국지가 인터넷에 있을 정도다. 더구나 게임을 계기로 중국 역사에 심취한 사람들이 삼국지 시대를 논하기 위해 모인 인터넷 사이트들도 여럿 있다.
우연히 이들 인터넷 커뮤니티를 접하면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는데 삼국지가 유비, 관우와 장비 의형제를 중심으로 촉나라 관점에서 쓰인 반면 미국의 삼국지 팬들은 촉, 위, 오나라 팬들이 골고루 있다는 것이다.
또 중국사학자들은 삼국지 시대를 주로 위와 촉의 정통성 시비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많은데 미국 사이트에선 오나라 팬들이 가장 많아 보였다. 오나라 팬들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역할이 과장되고 주유의 역할이 축소된 점을 강조하며 (오우삼의 영화에서도 주유가 주인공이다) 손권의 현명한 치세술을 가장 이상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아마도 비디오 게임을 할 때 삼국 가운데 아무 나라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입관 없이 삼국지를 접해서인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삼국지를 보다 객관적 시각으로 보게 도와준 셈이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접하는 삼국지 커뮤니티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삼국지 시대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한국 사이트와 영어 인터넷을 모두 뒤져봤는데 아쉽게도 영어 사이트에서 더 깊이 있고 역사에 근거한 자료들이 많았다. 특히 제대로 된 한글 완역판을 구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한국에 ‘삼국지’라는 책이 수없이 많건만 대부분 평역이거나 요약된 책이어서 유일한 완역판이라는 김구용 번역을 읽었는데 오래된 번역이라 고어체가 많고 생소한 중국 고대 문화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었다.
이는 서양의 삼국지라 할 수 있는 ‘일리아드’의 경우 완역판이 많고 평역은 드문 점과 대조적이다. 우리 선조들이 접했던 그대로의 삼국지를 읽고 싶었는데 한국 학계에선 이런 부분에 대해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미국 학자가 완역한 영어 삼국지(Romance of Three Kingdoms. Moss Roberts 역)는 생소한 용어와 개념에 관한 설명은 물론 정사와 다른 부분, 후대 학자들의 해석 등을 포함한 해설을 별첨했다.
비디오 게임이 여러 청소년들에 삼국지를 소개한 것처럼 앞으로 이번 영화로 더 많은 미국인들이 삼국지의 세계를 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국 출판계와 학계에서도 삼국지에 관해 더 깊이 있는 조명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정아
국제부 차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