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블랙 엔터프라이즈’의 발행인이 쓴 컬럼 페이지와 웨스트 체스터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종합잡지 ‘웨스트체스터’ 지 7월호에 실린 특집 ‘웨스트체스터에서 흑인으로 살아가기를 가르쳐준 내 부모의 가르침‘이라는 글의 한 페이지.
웨스트체스터 통신(노 려 통신원)
오바마 드라마가 이젠 좀 가라앉으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흑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점점 달라진다는 점이다.
몇 년 전,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웨스트체스터 지역의 스카스데일에 집을 봤다는 소식에 스카스데일 주민들이 조용한 동네가 시끄러워진다고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후 뉴욕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한 힐러리 클린턴이 스카스데일 상가에 나타났을 때, 즐을 서서 기다렸다가 악수를 했었던 나는 힐러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키가 작았고 생각보다 예쁘게 생긴 중년여성이 대통령 꿈을 꾸고 있다니 무조건 밀어주고 싶었다. 힐러리 자서전을 읽고 있을 때, 대학 다니는 아들이 놓아둔 오바마에 관한 책을 보면서도 오바마에 대한 관심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에이 뭘, 흑인이... 아직은 이르지. 게다가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떻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흑인차별에 대한 오바마의 연설이 있은 후 오바마에게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항상 가볍게 단상으로 뛰어올라가는 젊은 패기의 오바마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리고 오바마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뉴욕 타임즈나 CNN 방송을 열심히 보았다. 오바마가 궁지에 몰릴 때는 힐러리의 갈라진 목소리조차 싫어했었다.
그 무렵, 가끔 얼굴을 마주치곤 하던 스카스데일에 살고 있는 어느 흑인 신사가 오바마 잡지 한권이랑 뱃지를 건네주길 래 알고 보니 그 신사는 ‘블랙 엔터프라이즈(black enterprise)’라는 잡지의 창간자이며 발행인이었다. 속으로 “아니 이 아저씨가?” 했다. 나 스스로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일상에서 마주치는 흑인들에게 향한 무의식적인 편견의 벽이 있었다는 것을, 최근 들어 그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변화되는데서 알 수 있었다.
부자동네, 백인동네라고 알려져 있는 웨스트체스터에 흑인가정들이 이주해온 스토리는 구구절절하다. 그들도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보다 낳은 교육, 보다 낳은 환경을 따라 이 지역으로 들어왔다. 1700년대에 테리타운의 한 부잣집에 노예로 첫 흑인이 온 이후, 자연인으로서의 흑인인구가 거의 없다가 흑인가정이 눈에 띄게 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부터이다.
버락 오바마가 이만큼 올라오자 ‘웨스트체스터’ 잡지는 이곳에 자리잡기에 은밀히 애를 썼던 흑인들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다. 1930년대에 흑인은 들어올 수 없는 레스토랑을 라이(Rye)에서 운영하고 있었던 흑인 워커씨 가정은 현재 그 3세들이 아직도 라이에 살고 있으며, 뉴 로셀(New Rochelle) 병원의 첫 흑인 외과의가 된 로버트 모턴씨가 1963년도에 바닷가에 집과 요트를 산 일이 큰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8살짜리 아이가 컨추리 클럽 수영장에 들어가지 모든 백인 아이들이 기겁을 하고 뛰어나가 자기도 뛰어나와 울었다는 이야기는 흔한 것이라 치고, 1967년도에 와잇 플레인즈로 흑인에게 집을 안 팔려고 하는 것을 어렵게 이겨내고 이사 온 로렌스 오티스 그래햄씨의 부모가 두 아이들에게 꼭 지키라고 정해준 8가지 법칙이 있었다.
흑인가정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애씀이 동양아이가 수영장에 들어왔다고 놀라는 시대도 아니고 모든 문화가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이곳에서 자식을 키우며 가졌던 나의 마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동양 사람으로서 나도 모르게 늘 조심을 했던 것이다. 그 부모의 법칙은 1.절대로 집 밖에서는 청바지나 티셔츠를 입지 알고 꼭 단추 있는 셔츠를 입어라. 2.아무리 더워도 밖에서는 절대로 옷을 벗지 말라. 3. 거리를 걸으면서 무엇이든 먹지 말라. 4.학교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지 말라. 5.가게에 들어가서 어슬렁거리지 말라, 6.물건을 사면 껍 하나라도 꼭 영수증을 받아라. 7.경찰에게 저지를 당했을 때에는 어떤 경우에도 꼭 순종하고 늘 의지 밑에 갖고 다니는 테이프 레코더를 틀어라. 8.백인여자가 혼자 타고 있는 엘리 베이터에 타지 말라 이다.
이 모든 것이 나중 세대를 위한 ‘희망의 샘물’이 되었다고 저자 오티스씨는 쓰고 있다. 그렇게들 자리잡은 웨스트체스터의 흑인인구는 현재 93만 여명, 13.8%라고 한다. 최근에 많이 늘어난 웨스트체스터 한국인 인구는 몇 명이나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인이 별로 없을 때부터 자식들이 당당히 자라줄 것을 생각하며 샘물로서 이곳에서 25년 넘게 살아온 나는 흑인 피가 섞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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