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칼럼
한명철 목사 <은혜와 평강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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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깡통 속에 두 마리의 개구리가 빠졌다. 한 마리는 자신의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고 익사했다. 다른 한 마리는 자신의 운명을 부정했다. 죽을 운명을 부인하고 대신 살 길을 모색했다. 개구리헤엄의 원조답게 개구리는 필사적으로 헤엄을 쳤다. 기운이 다 빠져 갈 즈음해서 크림은 서서히 버터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우유가 딱딱한 버터로 완성되기 전에 개구리는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무용담을 간증하며 여생을 편히 살았을 것이다. 불행도 강하게 부정하는 의지 앞에는 맥을 놓고 만다. 절망을 비웃고 어두운 운명을 거부하던 개구리의 생존의지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왔다.
조선일보에서 출간했던(1988) 서적 중에 <정상의 자리는 넓지만 거기에는 앉을 데가 없다>라는 긴 제목의 번역 작품이 있다. 이 책은 새로운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고자 금언 형식으로 정리한 일종의 경영 행동 매뉴얼이다.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항상 오리처럼 행동하라! 물 위에서는 흔들림 없이 조용하게 지내라! 그러나 물 아래서는 미친 듯이 발을 놀려라!”(30면) 드러난 태연함의 배후에는 숨은 갈등과 노력이 엄청남을 가리키는 말이다. 재빨리 발을 놀리지 않으면, 그것도 정지 상태에서 끊임없이 놀리지 않으면 오리도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안정을 추구하는 것보다 힘든 것은 안정된 상태를 지속하는 일이다.
존 맥스웰은 그의 <성공의 즐거움>에서 인간의 태도와 관련하여 두레박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31면). 이런 이야기다. <두 두레박이 있었다. 하나는 낙천주의자였고 다른 하나는 염세주의자였다. 빈 두레박이 우물 속으로 내려가면서 투덜댔다. “나만큼 한심한 놈도 없을 거야. 우물에서 나올 때는 언제나 가득 차서 나오지만 들어갈 때는 항상 텅 비어 있단 말야.” 꽉 찬 두레박이 우물에서 나오며 말했다. “난 언제나 텅 빈 상태로 우물에 들어가는데 나올 때는 언제나 가득 차서 나온단 말야.”>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차이는 분명하다. 낙관론자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지만 비관론자는 빛 아래서도 어둠을 느끼고 자신의 빛마저 꺼트린다.
낙천적이고 염세적인 성품은 선천적이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태도로 말미암는다. 태도를 결정짓는 것이 관점이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 에 따라 사건을 해석하는 눈이 결정된다.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이해하는 틀의 문제다. 스탠리 존스는 “삶이 당신을 걷어찰 때는 당신을 차서 앞으로 가게 하도록 하라!”는 말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문제는 뒤로 걷어차고 삶은 전진하게끔 앞으로 걷어차는 것이 지혜다. 문제란 언제나 해결을 기다리는 기회덩어리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작은 물고기의 비늘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탁월한 사람은 행복한 환경이 아님에도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간이 경험하는 행복의 실체는 행복한 환경자체보다 행복감을 이끌어내는 마음의 힘에 좌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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