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석 목사 (금문교회 담임)
1947년 베두인 목동들이 앓어버린 양 찾아 나섰다가 쿰란문서 첫 발견
샌프란시스코 리즌오브아너 ‘시편119편.’사해문서’8월 19일까지 전시
샌프란시스코 링컨팍(Lincoln Park) 끄트머리, 금문교를 마주보는 절벽 위에는 아름다운 박물관 리즌오브아너(Legion of Honor)이 있다. 거길 가면 쿰란문서(Qumran Scroll)를 만날 수 있다. 이 시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특권 중 하나다.
1947년에 처음 발굴된 이래 9년 동안 모두 870권이 나왔는데, 그 엄청난 양의 쿰란문서 중 일부분이 지금 여기 샌프란시스코에 온 것이다. 가장 안쪽에 있는 게 제1전시관이다. 여기서 출입문에서 가장 먼 곳에 유리 상자가 하나 있는데, 시편 119편이 있다. 수 초 마다 조명이 점멸하는데, 혹시 열로 훼손당할까 배려한 듯하다. 그때마다 눈을 감고 말씀 생각에 잠길 수 있으니 도리어 유익하다. 시편 119편은 시편 1편처럼 토라시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둔 시다. 176절 매 절마다 말씀 혹은 율법 등 토라를 의미하는 단어가 적어도 하나씩 들어있다.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22개 자음을 읽을 때의 시각과 청각의 효과를 특이하게 살려낸 시편이다. 이런 문학 장치를 어크로스틱(알파벳 순서) 구조라고 부른다. 8절로 구성된 각 연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같은 문자로 시작된다. 각각 자음 순서를 따라 여덟 절씩 각 연을 첫 단어의 첫 철자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모두 176절(22 곱하기 8)이 완벽한 구조를 이룬다. 손으로 오른쪽에서 왼편으로 적어 내려간 모습에서 그런 의도적인 배치를 실감할 수 있다. 영어나 한국어 같은 외국어 번역으로는 도무지 느낄 수 없는, 히브리어 성경만 가지는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곁에서 누가 읽어준다면 그 소리도 즐길 수 있겠다. 히브리어. 후두 안쪽, 어쩌면 배 안에 담겨있던 떨림까지 모아 소리로 일어서는 말씀의 언어다.
쿰란문서는 달리 “사해문서”(Dead Sea Scrolls, 줄여서 DSS)라고도 부른다. 쿰란이 사해바다 서북면에 접한 마을인 데서 연유했다. 쿰란 공동체 사람들이 필사하고 보관한 쿰란문서는 주전 2세기 중반부터 주후 1세기 중반까지, 대략 200년 동안의 산물이다.
쿰란문서는 “하나의 완벽한 도서관”이다. 약 870권을 포함한다. 2,000년 전에 이 엄청난 장서를 보유한 도서관이라니! 이것이 얼마나 희귀한 사건인지 상상할 수 있을까? 쌓아두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작(필사)과 관리, 교육까지 포함하는 게 도서관이다. 250명의 주민 모두가 그 도서관 직원이라고 해도 벅차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더욱이 유대인들은 전통을 따라 성경을 필사한 이후 오래된 사본은 파기해왔다. 그런 방식이라면 항상 최근 사본만 살아남아야 옳다. 그런데 그 많은 고대 사본이 오늘 우리 손에 입수된 것은 무슨 뜻일까? 그 공동체에 어떤 위기가 순식간에 닥친 것은 아닐까? 여러 개의 동굴에 나누어 감추고 위기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존자 없이 공동체 마을이 파괴되었고, 감춰진 두루마리들은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우선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여건, 그리고 습기 없는 기후 등이 작용했다. 아니, 오늘 우리세대를 배려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
발굴 순서를 따라 제1-제11동굴로 부른다. 제4동굴에서 약 15,000 개의 본문 파편들이 나왔다. 이것은 약 500 권의 다른 문서 덩어리다. 그러니까, 전체 870권 가운데 500권이 바로 이 제4동굴에서만 발견된 것이다. 동굴 안은 더럽고 울퉁불퉁했다. 제4동굴에는 지난 2,000년 동안 쌓인 박쥐의 배설물과 먼지가 6피트나 두꺼웠다. 1950년대 발굴 당시 제4동굴은 요르단의 소유지였다. 여덟 명의 학자들이 모여 팀을 이뤘는데,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배경이었다. 유일한 제한은 유태인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쿰란 동굴의 아래 계곡을 와디 쿰란(Wadi Qumran)이라고 부른다. 유대 사막의 일부다. 지금은 말라있는 시내다. 당시는 물이 대개 흘렀다. 잘 알려진 대로 사해바다는 세계에서 가장 지형이 낮다. 해면보다 1,290피트나 낮다. 사해바다를 건너면 오늘의 요르단인데, 옛날에는 암몬과 모압 땅이었다.
1947년에 첫 번째 쿰란문서가 발견되었다. 몇 명의 베두인 목동들이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한 목동이 돌을 던졌는데, 어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제1동굴로 불리게 된 그곳이다. 갑자기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날은 그냥 지났다. 다음날 목동들은 소리가 난 동굴을 조사했다. 거기서 진흙 항아리 몇 개가 보였다. 일곱 개의 두루마리가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베들레헴으로 가져갔다. 칸도(Kando) 라는 사람이 구입했다.
수케닉(E. L. Sukenik)은 대단한 학자였다. 그는 학자 출신 이스라엘 군대 지휘관 야딘(Yigael Yadin)의 아버지다. 아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베들레헴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UN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하기 전날이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일곱 개의 두루마리 중 세 개의 두루마리를 갈색 종이로 둘둘 말아 품에 안은 채였다. 다음날 UN이 이스라엘을 독립국가로 선언했다. 그날 히브리대학은 이사야 두루마리를 확보했다.
처음에 학자들은 쿰란문서가 진품인지 가짜인지 몰랐다. 또 언제 때 기록된 것인지도 몰랐다. 미국 잔스합킨스대의 올브라이트(William F. Albright) 교수는 그것이 2,000년이나 오래 된 것이라고 했다. 예루살렘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보다 오래 된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나머지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다. 지휘관 출신 학자 야딘은 뉴욕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우여곡절 끝에 25만 불로 나머지 네 개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후 다른 동굴을 수색하는 작업이 경쟁적으로 학자들과 베두인인들 중에 벌어졌다. 모두 9년 동안 11개의 동굴에서 870개의 두루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이스라엘 정부는 쿰란 발굴을 금지하고 있다. 무슨 정치-종교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쿰란문서를 몇 가지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성경본문이다. 쿰란문서 발견 이전, 가장 오래된 사본은 AD 10세기에 기록된 마소라 텍스트(MT)다. 쿰란 사본이 발견되었을 때 전 세계의 신학계와 교회는 긴장했다. 그 천년 동안 발생한 어떤 중대한 필사 상의 실수가 발견되면 어떻게 할까? 다행스럽게, 아니 당연하게도 그런 비극은 나타나지 않았다!
쿰란문서 안에는 적어도 단편을 포함하자면 에스더를 빼고 구약성경이 다 있다. 재미있는 것은, 구약 39권 중에 에스더가 유일하게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쿰란에서 제외된 것일까? 알 수 없다.
제11동굴에서 시편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그것은 1960년대 버지니아에 살던 어떤 사람이 야딘에게 보낸 것이었다. 베들레헴의 칸도는 처음에 수천 달러를 요구했다. 다음날 그는 백만불을 요구했다. 1967년, 6일 전쟁 이후 베들레헴은 이스라엘 땅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날, 야딘은 어떤 육군 장교와 함께 칸도의 집으로 갔다. 칸도는 마루를 뜯었다. 여기 전쟁 두루마리가 감추어 있었다.
대략 39 개가량의 시편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다. 기록 시기는 주전 2세기 중반부터 주후 50-68년까지 다양하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전시되고 있는 시편 119편은 11Q-5로, 제11동굴에서 발견된 것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는 외경과 위경이다.
세 번째 카테고리는 종파문서다. 전쟁두루마리, 다마스커스 문서, 제자도 매뉴얼, 공동체 규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처음에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 사람들을 엣세네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새는 그저 쿰란파라고 안전하게 부른다. 그들은 스스로 개발한 달력(양력)을 사용했다. 임박한 종말을 기다렸다. 일부는 수도원 같은 분위기에서 생활했다.
파피루스나 심지어 동판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죽종이에 기록했다. 대개 히브리어다. 그러나 일부 아람어와 그리스어도 있다. 제3동굴에서 발견된 것인데, 동판에 기록해서 말아놓은 것도 있다. 동판 두루마리라고 부른다. 2,000년이나 지난 것을 펼치기는 어려웠다.
1950년대에 고고학자들은 쿰란 공동체 마을을 발굴했다. 주민이 약 25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제 궁금해진다. 이 쿰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900권 가까운 도서를 확보한 그들은 모두 종교인 집단이었나? 먹고 사는 일도 쉽지 않았을 텐데, 생업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종교적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격리시킨 분파주의자였다. 금욕주의를 표방했다. 임박한 종말을 기다렸다. 스스로 대단히 엄격한 생활규율을 세웠고 지켰다. 경제적으로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했다. 뜨거운 유대 사막의 고립된 마을. 그들은 거대한 도서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저력을 품었다.
쿰란 공동체를 엣세네파 사람들로 이해한 학자들도 있었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주후 23-79년)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37-95년)의 기록에는 엣세네파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 존재했는데, 독신주의자들로 고립된 생활을 선택했고, 경건하게 살았다고 했다. 위치를 고려할 때 쿰란 공동체는 엣세네와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개 쿰란 공동체를 엣세네 분파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존재했던 수많은 신앙공동체 가운데 하나로 본다. 남녀가 함께 살았던 모습, 수도원보다는 일반 거주지에 가까운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은 물길이 끊겼지만, 당시는 와디 쿰란에 거의 물줄기가 끊기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기보다 덜 고립된 마을이었던 셈이다.
현재 세계에는 많은 공동체 마을이 다양한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존재한다. 개신교 계통으로 국한하자면, 그것은 어느 정도 가톨릭의 수도원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종교개혁 때 이어받지 않기로 한 수도원 제도가 지역에 따라 나름대로 자생한 것이다. 가톨릭의 수도원 운동의 뿌리는 예수님의 탄생 이전 분파주의적 운동이다. 가톨릭 수도원은 배타적 분파라기보다는 다양성의 표현이다. 개신교의 공동체 운동의 지향점도 결국 하나의 말씀을 품은 다양성이다. 바르게 가자면, 공동체 운동은 고립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건강해야 한다. 쿰란 공동체도 바깥세상과 통로가 있었다. 그 증거가 쿰란문서다.
지진과 해일, 전쟁과 경제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확실히 종말의 때를 경험하고 있다.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우리는 모른다. 그 때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뜨거운 사막에 존재했던 쿰란 공동체. 고립을 고집했던 탓에, 그들이 남긴 것은 신기루 같은 존재였을까? 아니다. 오늘 우리가 그들에게서 배우는 것은 고립으로 지켜낸 영적 순결이다. 건강한 고립은 사회를 정화시키는 적극적 자기훈련이다.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준엄한 영적 삶이다. 거룩(holiness)은 곧 하나님께로의 고립(separation to God) 아닌가!
쿰란문서의 일부분이라도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전시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나는 10여 년 전에 금문공원 안에 있는 드영뮤지엄(de Young Museum)에 전시 소식을 접했었다.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로, 리즌오브아너는 드영뮤지엄과 자매 박물관이다. 하나의 티켓으로 두 군데 다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여기 전시된 것은 쿰란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유 있게 보려면 각각 반나절씩, 하루를 할애해 두어야 할 것이다. 14개월 회원권이 80불 정도다. 학생은 더 싸다. 이 여름에 좋은 선물권이 될 것이다.
바람이 절벽을 맞고 수면으로 떨어지는 샌프란시스코 북서 언덕. 나는 거기서 시편 119편을 2,000년 전의 히브리어 필사본으로 읽었다. 물론 읽는 소리도 들었다. 내 속에 울려 퍼져 지금도 공명하고 있는 그분의 음성이었다. 나를 지금도 떨게 하시는, 앞으로도 거룩한 두려움과 함께 결코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그분, 나의 하나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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