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를 풍미한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여성잡지 편집장으로 나온 코미디영화가 60년 전 크게 히트했다. 해외특파원 출신인 전 남자친구가 의도적으로 잡지사에 취직해 그녀와 함께 6월호 특집기사인 ‘6월 신부(June Bride)’를 취재하면서 엎치락뒤치락 사랑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애송이 데비 레이놀즈가 이 영화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뮤지컬 영화 ‘7인의 신부’도 6월 신부를 예찬한다. 두메산골 나무꾼 7형제에 단체로 납치돼온 마을처녀들이 눈사태로 길이 막혀 몇 달간 오두막에 갇혀 있다가 산속에 봄이 찾아오자 바람이 난다. 한 처녀가 “6월에 결혼하면 평생 신부로 산대요…”라고 노래하자 다른 처녀가 “6월에 결혼하는 신랑은 마음속 연인을 신부로 맞는다네…”라고 맞장구친다.
늦봄 겸 초여름인 6월은 날씨가 화창하고 신록이 우거져 생동감이 넘친다. 고급호텔과 유명 교회마다 결혼식 임대예약이 꽉 차 있다. 이 무렵엔 필자에게도 다른 때보다 결혼청첩장이 많이 날아든다. 최근 다운타운이 내려다보이는 알카이 비치 공원에서 모처럼 결혼주례를 맡았는데, 풍광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신랑신부가 곱절로 축복 받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선 삼사월과 구시월이 전통적 결혼 시즌이지만 미국에선 엄동설한의 2월 중순 발렌타인스 데이에 결혼식이 러시를 이룬다. 한국에선 결혼식 장소가 판박이 전문예식장이지만 미국에선 교회, 공회당, 학교, 법원, 호텔, 식당, 공원, 운동장 등 모든 장소가 예식장으로 활용된다. 라스베이거스의 약식혼례도 미국에만 있는 풍속도이다. 양가 가족들이 하와이나 캐리비안 같은 휴양지에 함께 가서 혼례를 치르는 ‘목적지 결혼식’도 있고, 역시 양가 가족이 골프장이나 온천에서 주말을 함께 즐기면서 혼례를 치르는 ‘주말 결혼식’도 있다.
세상이 변했듯 결혼식 세태도 변했다. 엄숙 일변도였던 식장 분위기가 지금은 신바람 제일주의이다. 필자는 아들이 결혼식 후 피로연 장에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들어와 깜짝 놀랐었다. 평소 모습과 너무 달라 “저 녀석이 어디가 아프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요즘은 신랑들이 ‘신랑입장’ 순서부터 춤추며 들어온다. 2주전 필자 주례로 공원결혼식을 올린 신랑은 신부를 위해 세레나데를 스스로 두곡이나 열창했다. 최근 LA의 친척 결혼식에 다녀온 한 친지는 신부가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요란하게 힙합 춤판을 벌였다고 귀띔했다.
결혼식 비용도 엄청나게 인플레 됐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신랑신부들이 한해 결혼비용으로 쓰는 돈은 물경 800억 달러에 이른다. 한쌍 당 3만 달러 꼴이다. 불과 두 세대 전만해도 그 정도 금액이면 집을 한 채 구입했다. 예식장 수배에서부터 결혼식-피로연 진행, 사진사 고용, 신혼여행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대행해주는 업소들이 호황을 구가한다.
결혼식은 장례식처럼 엄숙해질 수가 없다. 돈을 처들여서 신바람 나게 만들지 않아도 그 자체가 즐거운 잔치분위기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결혼비용을 펑펑 쓴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행복지수는 결코 결혼비용과 비례하지 않는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는 말도 3쌍 중 1쌍이 이혼하는 요즘 세태엔 시큰둥하게 들린다.
한인들의 진짜 고민은 결혼비용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이민역사가 한세기를 넘겼지만 아직도 한인사회 내에서 결혼대상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타인종과의 ‘족외결혼’이 점점 보편화 되고는 있지만 혼기를 놓친 노총각·노처녀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필자가 주례한 신랑신부도 30대 중반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서북미 한인사회에서 6월 신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교회와 단체들이 적령기 남녀 짝짓기 캠페인을 적극 벌였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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