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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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정언니가 책을 냈다. 영어로. 대학교재로 쓰일 것이란다. 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잘해 아시아 청년연맹이라는 국제모임에, 그 시절로는 드물게 학생대표로 외국 나들이도 해 본 언니다. 최근에 책이 나와 북사인회도 했는데 미국 사람들은 왔는데 한국 친구들은 몇 명 안 왔다고 서운해 하기에 사람이란 게 남보다 각광을 받는다 싶으면‘걔 옛날엔 공부 못했잖아’하는 식으로 무슨 건수라도 잡아 시기하는 수가 많으니까, 하다못해 예수님도 고향에선 대접을 못 받았다니까 그냥 넘겨버리라고 했는데 며칠 전 다시 전화가 왔다. 동창들이 100주년 기념인가 뭔가로 대대적인 모임이 있었는데 어느 동창이‘지가 무슨 책을 쓰니? 누가 다 써 줬지... 그 동생을 내가 잘 아는데 그 동생이 그러는데 지 언니 알츠하이머라더라. 그런 애가 무슨 책을, 더구나 영어로 쓰니 쓰길.’하며 뒤에서 수근 거렸단다. “네가 나 알츠하이머라고 누구한테 그랬니?”언니의 물음에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고 생각하니 작년, 어떤 분이 언니 동창이라는 여자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온 적이 있다. 언니 동창이라니까 언니의 동향을 이야기 하면서 최근 언니가 다운타운에 갔다가 갑자기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 건지 생각이 안나 당황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언니가 한창 책을 쓸 때여서 내가 자료 구하려 함께 한국에 갔었다는 이야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언니가 알츠하이머가 심해 내가 손 붙잡고 데리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둔갑이 되 있었다. 다행히 검사를 해보니까 알츠하이머는 아니라고 한다고, 그러나 앞으로도 혹시 그런 일이 또 생기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 된다는 이야기를, 우리 모두 늙어 가는 사람이기에 마음 아파하며 함께 나누는 심정으로 했었는데, 그런데 그런 나눔이 이런 악의에 찬 펀치로 드러나다니...
살면서 참 좋은 분들을 알게 되어 힘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의 악의에 부딪치면 맥이 쫙 빠지고 살맛이 안 난다. 남보다 조금 열심히 살았다는 건 이렇게 얻어터질 잘못인걸까? 몇 년 전, L.A.에서 전시회를 했을 때, 나는 다만 몇 명이라도 동창들이 와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그 날 온 동창은 나와 비교적 가까웠던 친구 한 명이였다. 그 때‘나 좋아서 하는 일 갖고 남에게 생색낼 것 전혀 없다. 이 사실을 잊지 말자’하고 내 맘을 다스렸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참 허전하다. 이제 우리가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 빤한데‘얘, 그 애가 이 나이에 이런 걸 했다는구나. 얼마나 신통하니. 같은 동창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럽니.’이렇게 나올 수는 없는 걸까?
아무리 늙어도 시기심만은 결코 줄지 않고 오히려 더 시퍼렇게 기승을 떠는 심성.싫다.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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