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것은 값이 없다는 말이 있다. 물, 공기, 햇빛, 비…… 의식하지 않는 것 중에서 값으로 따질 수 없이 귀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느낀다. 또 눈에 잘 안 띄는 것들 중에 중요한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자연 속에서, 사회 속에서.
아주 중요하지만 밖으로 안 보이거나 잘 이야기 안 되는 우리 몸의 장기 중에서 특히 콩팥이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 콩팥이 너무 좋아서 나는 신장내과 의사가 되었다.
대부분 사람은 콩팥을 2개 가지고 있다. 요추 상부 정도의 높이에 몸 뒤쪽으로 기다랗게 그러나 비스듬히 놓여 있다. 걸러진 소변이 잘 모아지게 각도가 되어 있다. 주먹 만한 것이 콩 같이 생겨 ‘키드니 빈’이란 말이 나왔다. 복부 대동맥에서 콩팥으로 들어가는 굵은 혈관은 점차 가지를 쳐서 큰 나무의 수많은 잔가지처럼 된다. 그리고 그 잔 가지들의 끝에는 작은 실타래와 같은 사구체가 놓여 있다. 피를 거르는 가장 최소단위인 사구체는 가느다란 실핏줄이 실타래를 돌돌 말아놓은 것 같다. 사구체는 한쪽 콩팥 안에 약 100만개씩이나 있다.
콩팥이 피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매 1분에 1,000cc의 피가 양쪽 콩팥을 지나간다. 사구체로부터 걸러진 소변이 모여서 점점 더 큰 관으로 합쳐져 나오는 모양은 마치 깊은 산속에서 시작된 옹달샘이 한 줄기의 물로 모이고 점차 개울을 이루어 개천과 강이 되어 바다로 나오는 모양을 연상케 한다. 나무와 산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혈관과 사구체, 요관은 잘 어우러져 우리 몸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해내고 있다.
콩팥은 피를 깨끗하게 하는 작용 외에 몸에 필요한 여러 호르몬을 분비해 피를 만들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해준다.
사람들 중에도 콩팥 같은 사람들이 있다. 눈에 안 띄면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10 여년간 매일 새벽 5시만 되면 갱들이 만들어놓은 낙서를 지우는 은퇴하신 미국 아저씨, 가난한 유학생들을 금요일마다 밥해 먹이시는 할머니, 아프신 분들을 무료로 병원에 태워다 주시는 아주머니, 도박에 찌든 사람들을 선도하시는 목사님, 깨어진 가정을 상담해 주시는 분들, 적지만 꾸준한 정성을 가난한 나라 아이들에게 보내시는 평범한 주부, 거리의 사람들에게 매일 음식을 먹이며 선도하시는 분, 빠듯한 살림에도 어린 자녀들을 잘 교육시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엄마들,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즐겁게 기부하시는 기업가 등…
정말 사구체만큼이나 많은 콩팥 같은 분들을 떠올리면 차가웠던 가슴에 훈훈한 피가 돈다.
그리고 콩팥이 나빠져 피를 투석하는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의사로서 내가 돌봐 드리는 투석 환자들 앞에서 나는 숙연해진다. 미국에는 그런 분들이 40만명이 있다. 또 그들에게 자신의 콩팥 하나를 기꺼이 기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그래도 돌아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개인의 삶과 사회의 노폐물을 잘 걸러내어 다른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모두 각종 호르몬과 같은 활력소를 내어 우리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나무와 산이 잘 어우러지듯, 콩팥 안에 있는 혈관, 사구체, 요관이 잘 조화를 이루듯, 우리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과 잘 조화를 이루어 더불어 돕고 사는 존재가 될 수가 있다면… 조물주의 걸작품 중에서 눈에 안 띄지만 중요한 부분이 되기를 갈망한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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