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 칼럼
한명철 목사 / 은혜와 평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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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부인, 처, 내자(內子), 안사람, 집사람, 여편네, 애 엄마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는 사람이 있다. 안살림을 도맡아 해서 안사람이라 부르는 것인지, 집을 주 활동무대로 하여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한다는 뜻에서 집사람이라 부르는지, 옆에 있어서 여편네라 부르는지, 애를 낳고 키워서 애 엄마라 부르는지는 모르겠다. 요즈음에는 아내를 부르는 호칭이 다양해서 매우 혼란스럽다. 상대를 향해 “자기!” 라 부르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전혀 어색해하지를 않는다. 분명히 자기가 아닌데도 말이다. “허니!” 라 부르는 것은 사랑의 애칭이니 애교스럽다. 젊은 아낙은 남편을 향해 “아빠!” 라 부르고 더 젊은 신혼의 아내는 “오빠!” 라 부른다. 호칭에 대한 말이 길어졌지만 그렇게 다양하게 불릴 만큼 한 남자에게 있어 아내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있어 과연 어떤 존재일까?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다. 무촌이란 가장 가깝다는 말도 되지만 가장 멀다는 의미도 있다. 현대여성들은 사회의 각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냄으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자립을 이루었다. 남성들에 비해 탁월한 여성들이 놀라운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체감한다. 아직도 남성들의 의식에는 우월의식이 뿌리 박고 있다. 전통적인 유교 윤리와 사회 제도 아래에서 반쪽 인간의 대우를 받아왔던 우리들의 할머니와 어머니와 누이들, 비록 여성 해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자와 자신의 아내를 향한 자세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보기에는 어렵다.
인도에서는 예부터 아내란 샤크티(shakti), 즉 “창조력”의 상징이었다. 아내에게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남성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영감의 원천이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남편은 지혜로운 아내에게서 사랑의 영감을, 예지의 능력을, 존재의 풍요를 얻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떼판치꼬보 마을과 그 주민>이란 글에서 “여자야말로 남자를 완성시키는 유일한 존재” 라고 갈파했다. 어빙(W. Irving>의 <스케치 북>에 나오는 [아내]에서는 남편이 참나무로, 아내는 덩굴로 묘사되었다. 덩굴이 참나무더러 말한다. “염려 말아, 나는 너를 지킬 수 있어!” 우람한 참나무가 가냘픈 덩굴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퍼져간 덩굴이 참나무를 지킨다.
아내(wife)란 한 주인(lord)에 의해서만 눌러질 수 있는 “초인종을 달고 다니는 여자”다. 헬런 스타이너 라이스가 <이 말씀 기억하오!>란 시에서 노래했듯이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있어 인생의 반려자(伴侶者)다. 나머지 반쪽을 채워주는 짝이다. 아내는 이런 존재다. 능력과 존귀와 아름다움에 있어 남편과 동등한 인격의 사람이다. 아내는 남편의 창조력을 향상시키고 영감의 원천이 되기에 적합한 스승이다. 아내는 한 남자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끈질긴 아내는 큼직한 남편(참나무)을 가장 안전히 보호해줄 수 있는 근위병(덩굴)이다. 아내는 남편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곁에 찾아와 주는 누이 같은 존재다. 아내는 남편과 삶의 방향과 목적을 함께 하는 짝이 되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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