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중 교무(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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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 군포 요꼴은 흙 냄새가 나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자연 앞에서 경건함을 지키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셨다.
달이 차서 보름이 되면, 달빛을 보고서 올 여름은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니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챙겨야지 하시고, 가을이 되어서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리면 그걸 다 따지 않으시고, 까치 밥으로 남겨 놓는 여유를 가지신 마음이 참 넉넉한 분들이셨다. 설날 아침 새 빔을 입고서 눈이 와서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을 걸을 때, 그 때 까지도 남아있는 하얀 눈 속의 빨간 감이 어찌나 운치가 있었던 지! 그야말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달빛이 말하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시고,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을 사랑할 줄 아시는 분들이셨다.
그리고 무엇인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동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어르신을 찾아가 그 분에게 어찌하면 좋을 지 묻는 모습도 기억이 난다.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울이 없었고, 사람과 자연 사이에 욕심의 벽이 없었고, 아이와 어른 사이에 공경과 사랑의 마음이 있었던, 이것이 바로 우리네 “종교”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 형체가 있고, 테두리가 있는 것은 부딪치게 되어 있다. 무엇이든 “이것이 옳다.”라는 강한 집착에는 많은 분별과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점점 내 안의 강한 집착의 테두리를 하나 둘 더 진하게 그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지. 그렇게 되니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달빛이 무엇을 준비하라 하는 지, 까치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지,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무엇을 바라는 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의 맑고 초롱초롱하게 깨어있는 마음이 다른 사물에 닿는 순간, 그 마음과 사물 사이의 간격은 사라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럴 때 하는 말이 바로 부처님 말씀인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 바로 부처님 행인 것 같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을 우리는 “무상대도(無上大道)” 즉, “위 없이 큰 도”라고 한다. 큰 도인데, 테두리가 없단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원불교를 연, 소태산 대종사님은 “산골짜기에서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없고 없고 또한 없다는 말 또한 없고, 아니고 아니고, 또 아니다는 말 또한 아니다.” 라는 시를 지으시면서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옛 성현들은 허공과 같이 마음을 비우라 했는데, 혹여나 그 “비우라!”는 말이 사족이 될까 두려워 그 말도 놓아버리라 하셨다. 즉, 없고 없이 텅 비었음 이여! 오히려 그 텅 비었다 말함도 아님이여! 라는 경종을 울리고 계신 것이다.
부처님의 무상대도는 어떤 가르침에 있지 않고, 우리 원래 텅 비어 아무런 걸림이 없는 우리의 참 모습을 함께 바라보자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無無亦無無, 非非亦非非”는 한번의 앎에서 그치라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삶의 순간 순간에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라는 간격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 참 부처님이 되자는 말씀인 것 같다.
내 안의 진실한 나와 만나서 이야기 하는 말없는 대화가 길어질수록 세상과 만날 때의 나의 모습이 더욱더 선명해지고 순수해진다. 마치 저 파란 하늘을 만지는 것처럼 깜짝 놀랄 만큼의 선명함과 상쾌함, 그리고 고요함. 아! 부처님의 손은 어쩜 이렇게 시원하면서도 따듯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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