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 최형란(소설가)
=====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신의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번째 장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1979년 소련의 침공, 내전, 탈레반 정권, 미국과의 전쟁등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다른 두 여자, 마리암과 라일라가 한 남자의 아내들로 만나 우정을 나누고, 때로는 어머니와 딸 처럼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며 고통과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많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전쟁과 무정부의 혼란을 피해 망명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곳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남겨져서 모진 억압과 고난을 견디어 나가야 했던 여자들의 수난사라고도 볼수 있다. 특히 1996년 이슬람교의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 정권부터 미국과의 테러전쟁으로 과도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세월동안 종교적, 윤리적인 이유로 여자들에게 가해졌던 남자들의 억압, 그리고 잔인하고 절망적으로 유린되었던 여자들의 인권에 대하여 묘사되고 있다.
부르카로 얼굴을 가리고 남자 없이는 외출도 불가능하며, 교육받지도 직장을 구하지도 못하고 철저히 남자의 소유물로 살아가는, 엄한 법령이 사회를 통제하지만 가정만큼은 법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기에 남자의 온갖 학대와 폭력을 견디어 나가는 여자들의 비참한 삶은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와 한국 전쟁, 그리고 보수적인 가치관이 팽배해있던 시대의 상황을 연상케 할 만큼 비극적이었다.
사생아라는 비천한 출생의 마리암과 자존감이 있는 전쟁고아 라일라, 이 두 주인공은 전쟁이 낳은 가난, 역사와 가정내에서의 폭력에 시달리는 절망적인 삶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사랑을 나누는데, 그녀들을 이어주는 끈은 바로 ‘모성’이었다.
마리암은 남편 라시드에게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라일라를 방어하려다 그를 살해한 죄목으로 탈레반에 의해 사형 당하는데, 잡초처럼 쓸모없는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 그녀에게 삶은 친절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존재로, 친구이자, 보호자,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에 그녀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회한보다는 한없는 평화를 얻는다.
마리암이 열 다섯살까지 살았던 늪지대의 작은 오두막을 찾아간 라일라는 그 곳에서 인형을 만들고 있는 어린 마리암의 환영을 본다 ‘몇 년 후에 이 작은 소녀는 삶에 요구하는 게 별로 없는 여인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에게도 슬픔과 실망이 있으며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꿈이 있다는 걸 밖으로 내비치지 않는 여인이 될 것이다. 강 바닥에 있는 바위처럼 아무런 불평없이 견디고, 자신을 덮쳐오는 물살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잃지 않고 나름의 형상을 갖춰가는 그런 여인이 될 것이다. 벌써 라일라는 이 소녀의 눈 뒤에 있는 뭔가를 본다. 라시드나 탈레반이 깰 수 없는 깊은 마음속을 본다. 석회암처럼 단단하고 굳은 어떤 것. 결국 자신의 삶을 끝내고 라일라에게 구원이 될 어떤 것.’
재건되는 도시 카불로 다시 되돌아와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라일라는 마리암은 결코 멀리있지 않고 그녀가 있는 그 곳에,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아프간 여자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해서 때때로 읽어내기가 힘들 정도로 가슴이 미어질 때가 많았기에, 이 글을 쓴 작가는 얼마나 힘겨웠을까 싶다. 고통받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사랑과 연민,안쓰러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며,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싯구에서 인용한 제목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아프간 여자의 내면에서 찾아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은 세밀하고 따뜻하다.
대중성과 문학성은 별개인데,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이 작품은 문학성도 뛰어난 걸작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여전히 생명은 태어나고, 가족과 친구들, 스승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과 사랑으로 삶은 계속 이어지기에…… 어느 상황 속에서도 진실로 사랑했던 기억만이 희망이고 구원이라고…… 슬픔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이 소설로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