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이영씨와 함께 한 이옥동 할아버지.
“김두한이가 날 형님이라 불렀었지…”
지난 1월28일 100세 생일을 맞은 이옥동(플러싱 거주)옹은 1948년 광복 후 북한의 공산정권을 피해 목숨 걸고 38선을 넘어온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이 옹은 당시 함경북도 청진에서 철도청에 자제를 납품하던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으나 광복 후 공산당이 들어서면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겼다.
이 옹은 ‘라디오로 남한방송을 듣는다’는 억울한 이유로 끌려가 전 재산을 빼앗겼다. 보통 전 재산을 뺏기고 나면 함경북도 길주로 이송돼 강제노동을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사업을 하며 부하직원들로부터 인심을 얻은 덕에 길주로의 압송만은 겨우 면할 수 있었다. “딱 한번 끌려갔지만 그걸로 공산당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다”는 이 옹은 이후 감춰뒀던 귀중
품을 들고 부인 정수복 여사와 함께 미련 없이 남한행을 택했다.
“그때 딸 둘에 큰 아들이 갓 태어났었지. 다섯 가족을 데리고 38선을 넘느라 고생도 많이 했지”라는 이 옹은 “(알선책에게)금붙이 하나 주고 넘게 해달라고 하면 좀 데려다 놓고 다른 사람이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거라며 나 몰라라 내빼면 그 다음날은 다른 사람이 데려다 주기를 한 달간 계속하다 결국 있던 귀중품 다 털리고 겨우 공산정권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 옹은 월남후 부산 광복동에서 ‘태극그릴’이란 이름으로 서양식 식당을 열어 크게 성공했다. 서양식 식당이 많지 않던 시절, 이 옹의 ‘태극그릴’에 장군의 아들 김두한씨가 돈가스와 비후가스, 비프스튜를 맛보기 위해 거의 매일 드나들었단다. 김두한씨가 이끌던 대한민주청년동맹 사무실이 그의 식당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이 옹은 훗날 김두한씨가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때 정치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현재 2~3년전부터 온 치매증상으로 플러싱 윌리암 베넨슨 양로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이 옹은 활달한 성격에 주위의 노인들로부터 인기 만점이다. 늘 즐겁게 살려는 긍정적인 사고가 장수 비결이라고.
이 옹을 돌보고 있다는 아이라 티모시 간호보조원은 “이 할아버지는 다른 노인 뿐 아니라 간호 보조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며 “늘 즐거운 농담으로 웃음을 선사해 준다”고 말했다. 이 옹은 2년전 94세의 나이로 별세한 정수복 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에 11명의 직계 손자손녀, 4명의 증손자를 두었다.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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