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인회 임원이사들.
신년기획-SD한인 이민사
리더십에 추진력 갖춘 문병길 회장 취임 눈부신 성장
상록회 노인회로 개칭 상의 등 창립… 전주 자매도시로
15년 전 1993년, 한인회는 문병길 회장이 취임하면서 새 전기를 맞게 된다. 리더십에 추진력, 재력(시온마켓 운영)을 갖춘 문 회장이 20, 21대 2년간 한인회를 이끌면서 한인사회가 질과 양적으로 눈에 띄게 팽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상공회의소가 탄생했고 한미노인회가 개명, 제2의 도약기를 맞은 때이기도 했다.
1993년 20대 한인회 출범
1993년 출범한 제20대 한인회는 24명의 임원·이사로 출범했다. 회장 문병길, 수석부회장 정창화, 부회장 이수용·양화버, 이사장 심재운, 부이사장 김일진, 총무 권치근, 재무 장재호, 홍보 전성호, 감사 김영대·조경제, 이사: 김태승·박명길·김태완·한형훈·잔 김·손태욱·박창완·이희준·김인조·김창선·정병애·김태홍·장성자씨 등. 1월 행사로는 5일 역대 회장들과 자문위원들과 상견례에 이어 21일 첫 이사회를 열고 ‘봉사하는 한인회’를 만들기 위한 연중행사를 확정했으며 23일 설맞이 경로잔치를 벌였다.
한미노인회와 상공 회의소 탄생
1993년 11월 SD 한미노인 상록회는 제3회 정기총회를 열고 청록회를 한미노인회(회장 박상만)로 개칭, 현재 한인사회 모범 어른단체로 성장하는 전환기를 맞았다.
SD 한인상공회(회장 김기홍)도 같은 해 3월16일 창립 후 한인회관에서 첫 임원회를 갖고 임원회 중심으로 사업계획을 편성하고 한인 상공인을 위한 대장정의 터를 닦았다.
전주 자매도시 공식화
문병길 당시 한인회장은 5월 전주시를 방문, 조명근 시장을 만나 이제까지 형식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샌디에고와 자매결연을 공식화했다.
문 회장은 한인회가 적극적인 교량역을 해 확실한 자매도시로서 동반자적인 교류를 할 것을 천명했다.
2개월 후 문 회장은 전주시를 대신, 수잔 골딩 시장에게 자매도시 기념패를 전달했고 최종인 전주대학교 박물관장의 작품전을 한인회관으로 유치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골딩 시장의 전주 방문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전주시는 SD 한인사회에 전통문화 보급을 위해 각종 농악기기를 기증할 것을 약속했다.
93년 당시 한인 단체들
1993년 한인회보 12월 실린 한인단체는 21개(동창회 포함)에 불과했다. 현재 50여개의 3분의1 수준이다.
93년 당시 한인단체 회장은 다음과 같다.
한인회(문병길), 상공회의소(김기홍), 교역자협의회(조주호), 골프협회: 이글(이기하)·한인(유창수)·북부(이대영)·남부(천영호), 라이온스(민병진), 볼링협회(조경제), 세탁협회(황규만), KAPA(지옥근), 해병동지회(백헌명), 한미부인회(코키워시), 페인트협회(박충길), 조기축구회(박예선), 서울대 동문회(김일선), 연세대 동문회(이재덕), 경복동창회(정현식) 등.
<문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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