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뉴저지 통신(서영민 통신원)
한국에서 60, 70년대를 겪은 사람이라면 벽안의 선교사들이 달동네에서 물지게를 지고 산꼭대기를 오르내리던 풍경을 직 간접적으로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당시 경제가 궁핍하던 한국에 이들이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교회를 짓고 신도들을 모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빈곤했던 이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려했던 것일까, 혹은 절망의 땅에 희망을 심어 주려고 했던 것일까?
심심찮게 보도되었던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 명단에 외국인 선교사 이름들이 실려 있음을 보고 왜 이들이 한국, 그것도 산꼭대기 빈민촌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을까 의문을 한번쯤 가져보았으리라.현재 한인사회의 많은 교회들이 외국 선교사역에 눈을 돌려 젊고 활기찬 학생, 전도사, 교역자들이 남미와 아프리카 등 헐벗고 굶주린 나라에 파견돼 어려운 현지인들을 돕고 있다.
과연 파견된 선교사들이 그 곳에 가서 하는 일은 무엇일까? 중부뉴저지 에디슨의 존 아담스 미들스쿨 7학년에 재학생 인 박동현(13. 미국명 더글라스) )군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회만 되면 오지에 가 선교사역을 남다르게 하고 있는 한인 2세이다.박군이 처음 해외선교를 가게된 것은 중남미 2006년 여름 방학 때 과테말라에 가본 것이었다. 플로리다 디즈니 월드 관광 정도로 쉽게 생각했던 그에게 과테말라 산골마을의 여정은 너무나 가혹했다. 우선 총 여행시간이 하루를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여섯 시간 비행기를 타고, (물론 중간에 연착한 시간은 계산하지 않았음) 여섯 시간 버스를 타고, 또 2시간 배를 타고 도착한 산 중턱, 이때부터 산자락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자란 박 군에게 있어 이 등정은 마지막 능선길이 가장 힘들고 길게 느껴졌다는데 실제로 걸린 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었다고 한다. 당시 10여명의 소년 소녀들이 전도사의 인도 하에 일주일간 그곳에 머물렀다 한다. 이런 여정을 박 군은 1백 여 군데도 넘게 물린 벌레 떼에다 특이한 것은 같이 갔던 다른 학생들의 거의 태반이 이 마을을 더 이상 방문하지
않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현은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더 방문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지난 2007년 4월 학교 봄방학 때 일주일, 그리고 뉴저지 선생 연합회(NJ Teachers’ conference) 기간인 11월 초 일주일씩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아버지 박주섭씨도 동현의 권유에 따라 동행하였다고 한다. 박 군의 아버지가 영웅이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아버지가 현지 마을로 가 주민들에게 농사짓는 법, 식수 거르는 법, 목조건물 고치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것을 보고 박 군은 그 때서야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언제나 전기도, 수돗물도 없는 산골 시골에서 자랐다는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실제 마음으로 다가왔던 적이 없었는데 과테말라 산골에서 일주일을 같이 지내면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물씬 커졌다는 것이다.
어머니 박은주씨에 따르면 박 군은 1995년 뉴저지 에디슨 시에서 태어나 줄 곳 그곳에서 자라온 평범한 중학생이다. 게다가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혹은 특별활동을 통해 숨은 재능을 발휘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물론 자랑을 하자면 2년 전 제 6회 미 동북부 한인 학교 연합회 주최 어린이 동요 대회에서 뉴욕 총영사가 수상하는 대상을 받은 적이 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수영은 이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세이프 가드 자격증을 딸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한인 사회에서 똑똑한 아이의 기준인 전교에서 톱을 하는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그런 박 군이 산골 마을에 찾아가 현지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스페인어로 읽어주고 글로 쓰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박 군은 13살 소년답게 가식 없는 태도로 “사실은요 애들이랑 축구
하고 놀았어요. 개들은요 축구를 너무 잘해요”라며 부끄러워한다. 어린마음에 별로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난 듯 “가지고간 장난감을 가지고 어린애들과 놀았어요”라며 덧붙인다.
이에 그의 어머니는 이 오지의 마을을 처음 갔다 온 이후 동현이는 친구 친척 집을 방문할 때 마다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이나 쓰지 않는 물품이 있으면 달라고 했단다. 어머니 은주씨에 따르면 처음에는 이것을 의아해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미국에서 친구들이 구석에 처박아 놓고 쓰지도 않는 오래된 장난감들이나 쓸데없는 골동품들이 과테말라 마을의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할까 생각을 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매번 커다란 상자에 장난감을 가득 담아 이것을 이고 산에 오른다고 한다. 특히 이 산골마을에는 식수가 오염되어 마실 물까지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두 번째 방문부터 우리가 도착하면 마을에 하나 뿐인 학교까지 폐교하고 마을 잔치를 열어요. 잠도 처음에는 텐트에서 잤는데 두 번째부터는 학교(물론 학교 건물이래 봤자 목조와 진흙으로
지은 단칸방)에서 자요. 그래서 애들과 놀이도 학교 운동장이나 건물 안에서 해서 벌레에 덜 물려 좋아요”라고 박 군은 말한다.
선교사가 꿈일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박군의 장래 꿈은 의외로 나중에 한국에 가서 영어 선생님을 하고 싶단다. 우선 할아버지 할머니께 영어를 가르쳐 드리고 다른 친척, 친구들을 열심히 가르쳐 영어를 잘하게 하고 싶단다. 특히 최근 어머니가 빌려다준 대조영이라는 연속극을 보면서 한국인이라는 뿌듯한 자긍심과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랑
스런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 박 군의 생각이다. 스스로도 하겠지만 한국에 있는 친지들이 세계 시민으로서 세계 국어인 영어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서 될 수 있으면 전 세계 많은 이들에게 한국의 우수한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복음 전파의 참된 의미는 현란한 웅변이나 형식적인 예절 보다 박 군과 같은 순수한 마음과 실천이 바로 예수가 가르치는 교훈을 올바로 전하는 것이 아닐까? 또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는 한국인으로서 작게나마 모국에 봉사하겠다는 그 마음이 이 땅에 민족의 정기를 내리는 씨앗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락처(917)776-2974 (yseo@lagcc.cuny.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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