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시내와 수태고지 교회
나사렛의 새로운 예수운동
요르단을 떠난 버스가 막상 요단강 너머 이스라엘 땅에 이르는 데는 불과 몇 분 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국경의 그 짧은 거리를 지나며 겪은 고통스런 절차와 마음 고생은 과연 우리가 말로만 듣던 중동사태의 심각성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해 주었다. 국경 주변 양국 초소의 무장병력들은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우리를 배웅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스라엘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할 때 여권에 이스라엘 도장이 찍힐 경우 나중에 아랍국가 방문이 어려우니 여권 대신 별도의 양식에 도장을 받으라는 요르단 안내원의 말을 듣는 순간엔 섬찟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스라엘 땅에 이르니 새로운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창한 영어로 자신을 이스라엘 국적 크리스찬이며 베들레헴 신학교 강사라고 소개한 새로운 안내원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 해 주었다. 오똑한 코와 늘씬한 키의 이 팔레스타인 청년을 보는 순간 2000년전 예수님의 모습과 피부 색깔이 바로 이 청년과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호감이 들었다.
버스가 갈릴리 호수 남쪽 좌편에 널리 펼쳐진 농토와 우편 산 언덕의 높은 골란고원 사이를 지나게 되자 이 청년은 우리가 바로 지나온 국경 지대의 기름진 농토를 가리키며 “No Man’s Land”라고 했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 땅이 일종의 비무장 지대와 같은 곳으로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농부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한 이유는 오른쪽 산맥 고원지방엔 염소와 양을 통해 젖을 얻고 왼쪽 서편 평원에서는 농사를 통해 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 땅 식수의 1/3을 공급한다는 갈릴리 호수를 끼고 북쪽으로 얼마를 달렸을까? 1세기 헤롯 임금이 로마황제 디벨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설립 하여 예루살렘 유대인들을 강제 이주하여 살게 했다는 디베랴시를 지나고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인 믹달(Migdal)을 통과하니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산상수훈(마 5장)을 가르치셨다는 언덕바지 산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해서 갈릴리 호수를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니 가버나움 동네가 나왔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어부들을(마4:18, 막1:16, 눅5:1) 또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고(마9:9, 막2:13, 눅5:27), 또 이 곳에서 백부장의 종(마8:5)과 베드로의 장모(마8:14, 눅4:38)및 중풍병자(마9:2, 막2:1)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등 많은 기적을 베푸셨다(마9:18, 눅8:40).
해질 무렵 갈릴리 호숫가의 석양을 옆으로 바라보며 남쪽으로 잠깐 내려오니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요2:1) 혼인잔치를 풍성하게 하신 예수님 당시 갈릴리의 가나(Cana)가 눈에 들어왔고, 얼마를 더 가니 우리의 숙소가 있는 나사렛에 도착했다. 예수님 당시 불과 200여 명 인구가 살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냐”(요1:46)고 우습게 여김을 받던 그 작은 동네 나사렛. 그러나 그날 우리가 도착한 나사렛은 밤하늘이 전기불로 대낮같고 언덕마다 고층 아파트와 현대식 주택이 넘치며 한 밤에도 자동차가 수 없이 밀리는 인구 7백만의 대도시였다.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며 (눅2:39), 예수님이 유아기에서 성년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며 지내다가 공생애를 시작하신 곳(눅4:16, 마13:54)이고, 천사 가브 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눅1:26)자리에는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수태고지 천주교회 (The Roman Catholic Church of the Annunciation )가 들어 서 있었다.
우리가 머문 청소년 수양관은 마침 나사렛 언덕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나사렛 시내 그 천주교회의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또 그 교회 건물에서 비추는 밤 하늘의 찬란한 조명은 온 나사렛 시내를 압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7백만 전체 시민중 불과 2%만이 크리스찬이요 전체 인구의 80%가 유대인들이고 나머지는 모슬림 들이지만 이 교회는 당당히 저들을 향해서 이 도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고향이며 예수님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는 멧시지를 당당하게 전하는 듯한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누가복음 4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활동에 분개한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언덕 낭떠러지 밑으로 밀쳐내 동네 밖으로 쫒아내려는 시도를 펼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저들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계속해서 회당에서 복음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치유함으로 본인이 오신 사명을 다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 나사렛 땅을 살아가는 크리스찬들은 예수님을 밀치고 동네 밖으로 내치려던 같은 세력들에 의해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힘든 여건 속에서 2천년 전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그대로 따라 가고 있는 영웅들로 보였다.
나사렛에서 첫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숙소를 떠나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나 사렛 북서쪽 하이파 부근의 이빌린이라는 작은 동네였다. 달동네 같은 골목길을 얼마나 헤메며 이리 저리 찾아 다녔을까? 갑자기 넓은 운동장이 있는 학교와 아름다운 십자가가 달린 웅장한 교회건물이 저만치 위에 나타난다. 멜카잇 교회(Melkite Catholic Church)라고 했다.
이 교회를 개척하여 최근에 오늘날 갈릴리 지역의 감독이 된 Elias Chacour신부는 그 자신이 수 십년 전에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자라나 자동차에서 잠을 자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육에 삶을 바쳐 이 학교를 이렇게 일구웠다. 이스라엘 정부의 온갖 억압과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의 사랑과 비폭력 인권운동을 실천한 차코어 신부는 오히려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와서 교육을 받게 학교를 개방했다. 결국 3번에 걸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세계감리교회 평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방해로 받지 못하던 건물 허가를 이 분의 간증에 감동을 받은 제임스베이커 미국무장관 부부의 도움으로 받게 되어 보잘것 없게 시작한 학교가 현재는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주 야간 사천명의 학생이 있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사립명문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나사렛 시내에 소재한 침례교회 학교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랍인 인구가 많은 이 지역에서 종교적 배경을 따지지 않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이 학교는 원래 미국 남침례교회가 세운 학교였다.
“크리스찬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희망”이라고 고백을 하며 기독교인 자녀들은 물론 모슬림 자녀들에게도 정성과 사랑을 가지고 함께 교육을 하는 이스라엘의 명문인 이 학교의 재학생들은 모두가 영어와 히브리어 및 아랍어 3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했다.
이 학교에 재학하는 모든 학생들은 자유롭게 성경을 배울 수 있고 현재 이 학교의 교사들 모두가 기독교인들이며 명문으로 소문난 이유로 항상 시설이 부족할 정도로 학생들이 몰려 온다고 했다.
학교교정을 잠시 거닐며 만난 이 학교의 몇몇 팔레스타인 학생들의 티없이 맑고 고운 저들의 미소와 눈빛에서 왠지 밝은 미래를 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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