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란…
그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에서 실은 선에 관한 기사 내용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선에 대한 정의는 많이 있어 왔지만, 그 개념 설정이 모호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는 선의 의미와 그 목적에 대해 정확히 말하겠습니다.
선은 산스크리트어 드야나(dhyana)에서 나온 말로 깊이 사유하면서 닦아간다고 하여 사유수(思惟修)라고 뜻 번역됩니다. 그런데 이 ‘사유한다’는 말이 문제입니다. 언필칭 ‘사유’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성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이성적인 생각은 너와 나, 시비와 선악을 따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사람들의 활동으로 타산적이며 때로는 간교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어찌 선이며, 수행이 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여기서의 사유는 이성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한 대상에 깊이 집중해 들어가는 마음의 살림살이를 말합니다.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한 대상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의 작용이 그치고 아주 고요한 상태로 들어간다.
안과 밖이 혼열일체가 되어 어떤 소리나 형태의 움직임에도 흔들리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태산같이 우뚝한 상태가 됩니다. 그것을 삼매(三昧)라 하고 이를 정(定)이라 번역합니다. 그렇게 심신이 태산 같이 우뚝 서면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져 명경지수 그 자체가 되며, 그럴 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보이게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보겠다. 선이란 온 마음을 기울여 어느 한 대상에 깊이 집중해 들어가면서 닦는 것이며, 그렇게 닦아나가다 보면 삼매의 상태에 이르러 진리를, 현실을, 리얼리티(reality)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리얼리티를 리얼라이제이션(realization)하는 것, 체현(現)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리얼라이제이션, 그것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본래 모습, 부처로서의 모습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본래 누구에게나, 그 무엇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조사선(祖師禪)에서는 그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본래 모습을 조작과 시비를 떠나 일상 속에서 분명히 보라고 강조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즉금(卽今), 당처(當處)에서 호호탕탕하게 거닐라고 말합니다.
간화선(看話禪)은 이 조사선의 정신을 이어 받아 모든 사유의 작용, 알음알이의 작용을 곧바로 차단하는 화두를 들고 내가 본래 부처임을 확인하는 수행입니다. 모든 생각의 끝자락, 온갖 말의 흔적까지 철저하게 끊어내는 화두를 마음 중심에 딱 자리 잡게 해 화두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 삼매의 상태에서 내가 추호도 빈틈없는 부처임을 체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선하면 간화선을 말합니다. 선은 또한 ‘선에 들어간다’ 하여 참선이라 하고, 참선하면 좌선한 상태에서 닦기 때문에 좌선 또한 선이라 부릅니다. 참선, 좌선, 선을 통칭하여 구별 없이 씁니다?
쉽게, 드야나 (선) 는 온몸으로 깊이 사유 (대상에 깊이 집중해 들어가는 마음의 살림살이) 하며 마음을 닦아나가는 걸로 보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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