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숫자로 하는 정치다. 아무리 옳은 주장도 지지하는 사람이 적으면 빛을 보지 못하고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표가 적으면 당선되지 못한다. 한 사람, 한 그룹만 가지고는 표를 모으는데 한계가 있고 가능한 한 많은 세력이 뭉쳐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 역사상 ‘세력 모으기’에 가장 유능한 재능을 보인 사람은 아마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닐까. 1933년 미국이 최악의 대공황에 빠져 있을 때 당선된 그는 사상 유례 없이 4선에 성공하는 기록을 세운다. 그가 이처럼 여러 차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대공황에다 제2차 대전이란 비상사태가 겹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남다른 세력 규합 능력 덕이 크다.
일자리를 잃은 저소득층, 노조, 남부 백인, 진보적 지식인, 흑인 등 소수계의 연합체인 소위 ‘루즈벨트 연합’(Roosevelt Coalition)은 1944년 그가 죽은 후에도 민주당의 핵심 세력으로 남아 60년대 말까지 미국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이 연합체는 월남전과 민권 운동, 와츠 폭동, 어퍼머티브 액션, 동성연애자 문제 등 숱한 이슈가 터져 나오면서 결국 깨지고 만다.
루즈벨트 이후 가장 성공적인 연합으로는 ‘레이건 연합’(Reagan Coalition)이 꼽힌다. 대외 강경파, 감세주의자, 기독교 세력, 보수 지식인으로 이뤄진 이 연합체는 1980년 레이건 대통령 당선과 함께 워싱턴 중심 세력으로 자리 잡은 후 최근까지 미국을 이끌었다.
그러나 과거 ‘루즈벨트 연합’이 그랬던 것처럼 ‘레이건 연합’도 요즘 붕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올 공화당 대통령 당내 경선에서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다는 점이다. 아이오와에서는 당내 기독교 보수파를 대변하는 마이크 허커비가, 뉴햄프셔에서는 대외 강경파인 존 매케인이, 미시건에서는 경제 우선의 미트 롬니가 각각 당선됐다. ‘레이건 연합’을 한데 묶을만한 역량을 지닌 인물이 없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객관적 여건도 좋지 않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비율이 50대 36으로 나오고 있고 선거 기금 모금도 민주당이 앞질러 나가고 있다. 선거가 치러지는 연방 의회 지역구 다수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인 대다수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의 뜻밖의 선전으로 당원들 사이 대선 열기가 뜨겁다.
이라크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공화당 최대 악재가 사라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경기 침체가 뚜렷해지면서 새로운 악재로 떠오르고 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미국민은 경기가 나빠지면 집권당을 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든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공화당이 11월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오는 29일 열릴 플로리다 예선과 2월 5일 ‘수퍼 화요일’ 경선에서 뚜렷한 승자가 나오고 온 공화당이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또 힐러리와 오바마가 대판 싸워 민주당 분열이 심화되면 혹시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올 대선은 공화당에게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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