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물건 싸게’ 사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샤핑의 지혜이다. 소비자들은 품질 좋은 물건을 한 푼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세일을 기다리고 발품을 판다.
그런가 하면 똑같은 물건을 비싸게 팔아야 잘 팔리는 이상한 현상도 있다. 시장 물건을 그럴듯한 부티크에 진열해 놓고 비싼 가격표를 붙이면 그 물건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비싼 만큼 더 좋아보여서 소비자들은 주저 없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는 흐뭇해한다.
가격표에 따라 달라지는 건 눈만이 아니다. 혀도 달라지는가 보다. 똑같은 와인이라도 비싼 가격표를 붙여 놓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최근 칼텍 경제학과 연구진은 21명을 대상으로 와인 시음 실험을 했다. 5종류의 카베네 소비뇽을 15차례 맛보게 하면서 각각의 맛을 평가하게 하는 실험이었다.
이때 실험의 초점은 같은 와인에 다른 가격표를 붙여놓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시음한 실험대상자들은 똑같은 와인이라도 비싼 가격이 붙은 쪽에 더 높은 점수를 매기고 더 맛있어 했다는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거나 “모르면 돈 많이 주라”는 속설과 맥을 같이 하는 결과이다. 떡의 모양이 맛을 좌우할 리 없지만 왠지 보기 좋은 떡이 더 맛있는 것은 주관적으로 이미 그렇게 뇌에 입력이 돼있는 결과이다.
“모르면 돈 많이 주라”는 말은 비싸면 그만큼 품질이 좋으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대개의 경우 사실이기도 한데, 와인 붐이 일면서 특히 와인에 많이 적용이 되기도 한다. 와인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누구나 다 즐긴다니 빠질 수는 없고, 즐기자니 “어떤 게 좋은 와인이지? 아무래도 비싼 게 좋은 거겠지”하는 심리이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 중의 하나는 물건 값을 아예 높이 잡아버리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면 누가 살까 싶지만 사람의 심리란 게 묘해서 고가일수록 사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가 크다. 바로 베블런 효과이다.
물건 값이 오르면 수요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지적한 이 이론은 19세기 후반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부자들의 과시적 소비 형태를 비판한 데서 유래했다.
20세기 들어설 무렵 미국은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면서 신흥 자본가들이 탄생하고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다. 당시 부자들은 재력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느라 비싼 물건일수록 사들이며 돈을 물 쓰듯 했다. 요즘 말하는 명품족의 원조들이다.
극소수의 특수층을 대상으로 한 초고가 마케팅은 근년 특히 극성이다. 1년여 전에는 다이아몬드 박힌 휴대전화까지 나왔다. LG전자가 보석 디자이너와 손을 잡고 수천만원 대의 다이아몬드 휴대전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었다. 고가일수록, 그래서 일반인들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액수일수록 특수층의 구매 욕구를 강하게 자극한다는 마케팅 전략인데 얼마나 성공을 거뒀는지는 모르겠다.
필요가 아니라 욕구 충족을 위해 소비를 하는 데서 생기는 현상들이다. 재력이 없다면 주관이라도 뚜렷해야 세상 살기가 덜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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