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정조 이산’에서 감초 같은 웃음을 선사하는 도화서 화공 이천이 던진 대사가 얼마 전 화제가 됐다. 춘화 그리는 일로 가욋돈을 챙기면서 정작 도화서 일은 등한시하는 전형적인 복지부동형 관리인 이천은 자신의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면서 “난 젖은 낙엽이네. 쓸어도 안 쓸려”라는 명대사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젖은 낙엽은 질긴 생명력을 뜻하면서도 동시에 처량한 신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젊었을 때 군림하다 은퇴 후 집에 들어앉은 남편들을 종종 ‘젖은 낙엽’에 비유한다. 구두 뒷굽에 찰싹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낙엽처럼 아내에게 매달리지만 많은 일본 아내들은 이런 젖은 낙엽들을 가차 없이 내친다. 이른바 ‘황혼 이혼’이 그것이다. 막내 결혼식을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보낸 후 남남으로 헤어지거나 남편의 은퇴기념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갈라선다. 일본인들은 이런 현상을 ‘나리타의 이별’이라고도 부른다.
황혼 이혼은 사회적으로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상당한 이유가 있는 현상이다. UC의 신경정신학자인 루안 브리젠틴 교수는 얼마 전 출간한 ‘여성의 뇌’라는 책에서 “여성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뇌의 구조가 변한다”며 “황혼 이혼은 폐경기 에스트로젠 수치가 낮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젠은 여성을 더욱 여성답게 하고 정서적으로 순종적 성향을 증가시켜 준다. 때문에 이 호르몬이 줄어들면 젊은 시절에는 견뎌냈던 남편의 고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더 강해지고 인내심은 줄어들어 황혼 이혼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적·생물학적 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눈치 빠른 것이 일본인 남편들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애처가 클럽’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국 헌신적 남편협회’도 그 가운데 하나. 이 협회 회원들은 ‘사랑의 황금법칙’ 3가지, 즉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를 정해 놓고 모임 때마다 이런 구호를 외쳐댄다. “아내에게 이길 수 없다. 이기지 않는다. 이기고 싶지 않다.”
일본 남편들이 부쩍 애처가들이 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얼마 전부터 연금분할제도가 시행돼 아내가 이혼 시 남편 연금의 절반까지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적 이유 때문에 지난날을 반성하고 더욱 잘하겠다고 다짐하며 아내 마음잡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노년에 이를수록 ‘용감지수’가 올라가고 남자들은 ‘소심지수’가 높아진다. 남녀간 힘의 관계에서 역전이 이뤄지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거기에다 일본의 연금제도처럼 경제권에 있어서의 평등까지 보장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애처가도 여러 유형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아내의, 아내에 의한, 아내를 위한 남편’을 내세우는 ‘링컨형’이 있고 ‘아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 말고 내가 아내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케네디형’이 있다. 또 ‘나는 아내 사랑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외치는 ‘박정희형’도 있다.
어떤 유형이 됐던 간에 요즘 사회의식과 구조, 그리고 제도가 변해가는 것을 볼 때 아내 사랑보다 더욱 확실한 ‘종신보험’은 없을 듯싶다. 심리학자들은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성공은 바로 노년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결국 아내 사랑은 성공으로 가는 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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