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일본 전국시대 통일을 앞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토지를 나눠줘야 하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논공행상’을 어설프게 했다가는 지방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히데요시는 대륙을 점령해 호족들에게 토지를 나눠준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던 전란인 임진왜란은 일본 막부의 논공행상 고민에서 촉발된 것이다.
“공을 논하여 알맞은 상을 준다”는 뜻의 논공행상은 고금을 통해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논공행상이 공평하지 못하면 지도자와 부하간의 신뢰가 떨어진다. 그리고 조직 내의 암투와 갈등의 싹이 된다.
논공행상의 어원은 삼국지의 오서 고담편에 나오는 ‘논공행상 각유차’(論功行賞 各有差)이다. 즉 공을 따져 상을 주되 차이를 둔다는 뜻이다. 오나라 재상인 고담이 위나라 군대를 격파한 장수들에게 상을 내릴 때 공적에 따라 갑과 을로 나눴다.
고담이 친동생 고승에게 갑을 주자 반대파들이 우르르 나서 “고담이 전공을 그릇되게 보고해 임금을 기만했다”고 문제 삼고 나섰다. 결국 고담은 동생과 함께 유배돼 2년만에 사망했다. 이처럼 신나는 일이 되어야 할 논공행상에는 애초부터 비극의 씨앗이 잉태돼 있었다.
현대에 와서도 논공행상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데는 논공행상의 필요성도 한몫을 한다. 회사가 성장하는데 공이 있는 부하들에게 상과 자리를 줘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주요 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는 자신의 당선을 위해 뛴 참모들과 후원자들에게 논공행상을 통해 적절하게 보상을 한다. 베스트셀러인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것을 ‘상호성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정치세계에서 특히 ‘상호성의 법칙’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치알디니의 진단이다.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참모들과 후원그룹의 희생과 땀이 있었다. ‘상호성의 법칙’에 따라 이 당선자는 이들에게 적당한 보상을 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문제는 상을 나눠줘야 할 대상은 많고 자리는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명박 대세론’이 자리 잡으면서 선거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한나라당 내 논공행상 다툼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선 전까지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았으나 이제는 입장이 달라졌다. 서로가 좋은 자리를 놓고 다퉈야 하는 경쟁자가 된 것이다. 벌써부터 경쟁 인사를 ‘씹어대고 깎아내리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전이 본선보다 더 힘들다”는 푸념과 한탄이 나온다.
대선 후 논공행상에 따른 잡음이 생기면 무엇보다도 정권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잡음을 없애기 위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대안은 자리를 자꾸 만드는 것인데 이것은 이명박 당선자가 표방해 온 ‘작은 정부’와 ‘실용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이런 함정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얼마나 합리적인 논공행상을 하는가에 이명박 정권이 상큼하게 첫발을 내디딜지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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