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일 목사의 성지탐방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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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루터 성지방문을 계획하면서 가장 마음에 그리던 곳은 바르트벅 성 (Wartbug Castle)이었다. 루터가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영적으로 가장 큰 도전을 맞을 때 그가 은신하며 시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텐벅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첫 방문지를 바르트벅으로 정하고 호텔이 있는 인근의 아이센악(Eisenach)으로 차를 몰았다.
여행 전 집에서 준비한 구글의 지도상으로는 푸랑크푸르트 북동쪽 두 시간 정도 거리라고 했지만, 처음 달려보는 독일의 넓지 않은 고속도로에서 오후 트래픽을 헤쳐가는 우리에게는 거의 한 나절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인근 동네 골목을 몇 번씩이나 돌며 아직 영어가 익숙지 않은 구동독 지역의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 호텔에 도착을 하니 날이 어두어졌다.
다음날 아침 중세기의 고풍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바르트벅 입구에 들 어서니 저만치 산 위에 그림처럼 올라 있는 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차가운 겨울 냉기에 몸을 감싸기 위해 가져온 옷가지를 겹겹이 껴 입으면서 김목사님과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때 심정을 뭐라고 할까? 꼭 어린 애처럼 나만이라도 빨리 올라가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1517년 10월 31일 비텐벅 게시판에 <95개 조항>을 내건 33세 청년 신학자 루터는 곧바로 도전을 받게 된다. 루터의 의도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카톨릭)교회를 사랑하였기에 이 게시판 사건도 학자로서 남들과 함께 토론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함이었다. 루터는 같은 내용의 문건을 몇몇 감독들과 친구들에게도 보내는데 사실은 처음엔 큰 반응을 얻지 못한다. 그런데 부진한 면죄부 판매의 타개책으로 요한텟젤 신부가 루터의 글에 대해 반박문을 쓰고 텟젤의 도미니칸 동료들이 거들게 됨으로 점차 시선을 끌게 된다. 결국 교황청은 이듬해 로마에서 이단판정을 내리고 루터의 로마 소환령을 내리게 되는데, 나중 에는 로마소환 대신 여러 경로를 통해서 루터의 입장번복을 설득한다.
신학적 소신을 바꾸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열정을 가지고 강의와 성서
연구에 몰두하며 급기야는 교황의 잘못된 권위까지 지적하자 1520년 6월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포도원을 먹어 삼키는 짐승으로 규정, 60일 이내에 번복 하지 않을 경우 파문할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그 해 12월 루터는 자기 손에 전 달된 경고장을 교황의 다른 문서들과 함께 비텐벅 외곽에서 불살라 버린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청은 곧바로 루터를 파문하고, 찰스5세 황제는 그를 소환하도 록 지시한다.
그렇다면, 중세기의 이런 추상같은 절대 종교권력 및 세속권세의 위협 속 에서도 루터가 굴하지 않고 이 땅의 교회갱신과 회복을 위해 나머지 30여 년 동안의 삶을 바치며 꿋꿋하게 일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루터 뒤에는 후레드릭(Frederick the Wise)이라는 제후가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의 황제 선출권을 가진 7명 제후 중 하나로 막강한 세속 권력을 가진 후레드릭은 바로 루터가 가르치던 비텐벅 대학교의 설립자이기고 하다. 루터가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받고 찰스 황제로부터는 소환명령을 받자, 후레드릭은 황제에게 소견서를 보내, 청문회를 통해 루터의 입장을 들어볼 기회를 갖지 않고는 그를 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루터는 1521년 4월 보름스 국회(Diet of Worms) 에서 자기 입장을 개진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를 위해 비텐벅을 떠나 남쪽 보름스로 향하던 길에 루터는 중간 여러 도시에서 설교를 통해 자기 입장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고, 목적지인 보름스에 도착을 했을 때는 많은 군중들이 루터를 향해 큰 환호를 보냈다고 한다.
청문회 첫날 심문자는 루터가 저술한 수북한 책들을 가리키며 그 책들을 통해 밝힌 루터의 입장을 번복할 것인지를 묻는다. 루터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정회를 한 후 다음날 계속된 회의에서 루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성경을 통해서 확신을 얻고 이성에 합하지 않는 한, 교황이나 교회의 어떤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내 입장을 번복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도우소서.
즉시 유죄판결을 내린 황제는 루터에게 다시 며칠 간의 여유를 주며 번복을 종용 하는데, 이 때 보름스를 떠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루터는 일단의 복면객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이들은 후레드릭 제후가 보낸 사람들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루터를 후레드릭의 요새인 바르트벅에 은신케 한다.
그러면 후레드릭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에 도움은 커녕 큰 장애가 될 이런 무모한 일을 왜 시도했을까? 기록에 의하면 후레드릭은 바로 루터가 비텐벅 캐슬교회 대문에 95개 조문을 써 부친 그 전날 밤에 신비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 속에 한 수도승이 하나님의 명을 받고 많은 성도들의 호위를 받아 자기에게 와서 하는 말이, 나는 어떤 계교를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왔습니다. 한 가지 부탁은 제가 비텐벅 캐슬교회 대문에 뭘 좀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제후가 허락을 하자 수도승이 펜을 들고 글을 쓰는데 그 펜이 얼마나 큰지 그 끝이 로마에 까지 닿아 교황의 머리를 뒤 흔드는 게 아닌가? 놀라 잠이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엔 그 펜 때문에 성난 사자가 어찌나 울어대는지 온 로마제국이 무슨 일인지 알려고 한다. 세 번째 꿈엔 자신을 포함 동료 제후들이 로마로 달려가 그 펜을 꺾어 버리려 하자 그 펜이 강철처럼 세어졌고, 결국은 큰 소리가 나는데 보니 그 수도승이 가진 펜에서 다른 많은 펜들이 솟아 나와 다시 놀라서 잠이 깨어보니 한 낮이 되었다고 한다. 결국 후레드릭은 이 꿈 때문에 루터를 보호하는 후견인 역할을 한 셈이고, 이 후레드릭을 움직인 분은 하나님인 셈이다.
루터가 그렇게 구출을 받아 몸을 숨기며 11개월을 지내던 바르트벅 성. 루터는 이 곳에서 지내며 머리와 수염을 기르며 또 이름도 바꾸어 기사 조오지 (Knight George)로 행세한다. 산 밑에서는 몸이 아파도 아플 수 없었던 유명인사 학자 개혁자 투사가 아닌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자연인 조오지는 이제 마음껏 아프기도 하고 마음껏 쉴 수도 있는 기회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루터는 첩첩 산중의 고요한 피난지에서 오히려 밤낮으로 사탄과 힘겨운 영적 싸움을 하며 하루 빨리 비텐벅에 돌아갈 날을 고대한다.
숨을 모아 쉬며 바르트벅 성의 그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만 해도 나는 왜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왔는지를 알지 못했다. 성 안에 들어서니 그 주간이 바로 성엘리자벳(St. Elizabeth) 탄생 8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 기간 중 이라고 했다. 엉겁 결에 표를 사서 전시회장에 들어서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바르트벅 성은 11세기 초에 지어졌고 수 백년 동안 왕가와 귀족들이 사용하던 성이었다. 루터 이전 이미 300전에 헝가리 공주 엘리자벳이 이곳 튀링기아 (Thuringia) 왕가에 시집 와서 살게 되었는데, 나는 뜻하지 않게 중세기 유럽 왕가의 생활용 품과 값진 유물들을 이 전시회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엘리자벳 공주가 사용하던 순금 표지로 된 여러 권의 성구 묵상집과 보석으로 뒤덮힌 성찬집기 등만 보더라도 당시 왕족들의 삶이 어떠했는 지를 나는 능히 가늠할 수 있었다. 또 당시 그 가족들이 사용하던 예배실의 벽에는 지금도 800년 전에 그려진 아름다운 성화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어디 천상에 온 것을 착각할 정도로 화려했다.
부족함이 없는 왕족의 삶을 누리던 엘리자벳의 삶에 변화가 온 것은 남편이 십자군 전쟁에서 죽게 되면서다. 평소 경건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라면 왕궁의 집기까지 아낌 없이 내 놓던 엘리자벳은 어느날 만일 네가 완전해지고자 한다면 가서 네 재산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19:21)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왕궁을 떠나 성 밑에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다가 젊은 나이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분명 루터는 바르트벅 성의 뜨락을 거닐며, 또 자기의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랑하는 독일 백성들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중에, 또 그 성 안 골방에서 악한 영들과 싸우며 희랍어 성경을 독일어로 처음 번역 하면서, 또 성 안의 그 화려한 예배실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300년 전 바로 그 곳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다가 산을 내려간 성엘리자벳의 이야기를 기억했을 것이다. 아니 그 보다는 엘리자벳으로 하여금 산을 내려가 고난받는 백성들과 삶을 함께 하라고 하신 주님의 그 음성을 다시 생생이 들으면서 루터는 결정을 내렸을 것 이다. 산을 내려가 개혁의 현장, 고난의 현장, 백성들이 신음하는 현장 비텐벅 으로 돌아 가 나도 내 삶을 바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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