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인종 청소를 자행한 집단이 나치 독일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히틀러 집권 말기 수년 동안 600만에 달하는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불구자들이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된 후 집단 매장됐다.
이들을 처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나치 친위대는 불학무식한 불량배들이 아니라 독일 사회의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은 시간이 날 때면 하이데거와 니체를 읽었고 바그너의 노래를 암송했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도살장의 소처럼 개스실로 끌려간 아우슈비츠에서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간의 잔인함과 지적 수준과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확인시켜 준다.
뉴욕 필하모닉은 1842년 탄생, 현존하는 미 교향악단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악단이다. 1846년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미국에 처음 선보인 것도 뉴욕 필이며 1893년 드보르작의 9번 ‘신세계’ 교향곡을 초연한 것도 뉴욕 필이다.
그 뉴욕 필이 내년 2월 평양에서 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이번 평양 공연에서도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과 함께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이 연주된다. 뉴욕 필 연주자들은 25일 베이징을 떠나 평양에 도착한 후 27일 아시아나 특별기편으로 서울에 들어와 다음날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초청에 미 국무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성사되는 이번 공연은 미중 수교를 가능케 한 ‘핑퐁 외교’를 방불케 하는 ‘문화 외교’로 분석하고 있다. 탐 랜토스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번 공연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말했다.
뉴욕 필의 음악이 북한에서 연주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과 서양 문화를 추악하고 타락한 부르주아 체제의 산물이라고 만 배운 북한 주민들에게 고전 음악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지금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 감상을 할 처지인지는 의문이다. 10 여 년 째 계속되고 있는 북한 핵 문제는 아직도 해결된 상태가 아니며 지금도 함북 회령을 비롯한 수많은 강제 수용소에서는 20만 명의 무고한 주민이 아우슈비츠를 능가하는 참혹한 대우를 받으며 죽지 못해 살고 있다.
11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 회견장에 나온 뉴욕 필하모닉 회장인 자린 메타는 북한의 인권 탄압에 대한 질문을 받고 “거기서 연주회를 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메타와 나란히 선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김정일이 이번 공연에 참석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모른다”, 모차르트와 김정일 중 누가 더 훌륭한 오페라 작곡자냐는 질문에도 “대답할 자격이 없다”고 답했다.
평양 하늘 아래 울려 퍼질 ‘신세계’ 교향곡이 아우슈비츠에서 연주된 베토벤 교향곡과는 다른 역할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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