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면 잠자리를 봐 드리고 아침이면 문안을 드리며 겨울이면 따뜻하게, 여름이면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 - 중국의 고대 경전 예기에 나오는 정성온정(定省溫?)이다.
예기는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기본예절로 이들 네 가지를 가르쳤다. 아침에 잠을 깨면 부모가 밤새 별고 없으신지 먼저 인사드리는 신성(晨省), 저녁이면 잠자리를 반듯하게 정돈해 불편이 없도록 하는 혼정(昏定),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도록 보살피는 동온(冬溫), 더운 여름이면 서늘하게 지내도록 신경 쓰는 하정(夏?)의 네 가지 도리가 효(孝)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한 지붕 아래 부모를 모시고 살던 대가족 사회에서는 정성의 차이는 있을망정 누구나 그렇게 하던 자연스런 일이었다. 노부모가 자식 얼굴을 그리워 할 일은 없었다.
세상이 바뀐 요즘은 자식 얼굴 보는 일이 ‘호사’가 되었다. 저마다 사는 거처가 다르고 일이 바쁘니 부모도 자녀도 자주 만날 기대는 애초에 접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녀가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근무지를 옮기면 일 년에 한두번 얼굴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똑같은 조건에서도 ‘돈’이 개입되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부모에게 돈이 있으면 그 바쁜 자녀들이 용케도 부모 만날 시간을 낸다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국인구학회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60세 이상 연령층이 같이 살지 않는 자녀와 만나는 횟수에 영향을 주는 유일한 변수는 부모의 소득이다. 부모의 소득이 1% 올라갈 때마다 부모와 자녀가 1주일에 한번이상 만날 가능성이 2배 높아진다는 것이다. 노년에 돈 없으면 자녀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 말이다.
나이 들수록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노인들이 전부터 해오던 말이다. “죽기 전에는 절대로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말 것”은 노년의 삶의 지혜 1호로 꼽힌다.
며느리가 여럿인 시어머니들이 즐겨 쓰는 ‘전략’이 있다. 며느리들이 올 때마다 패물들을 꺼내 닦으면서 이것저것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절대로 나눠주지는 않는다. 그러면 며느리들이 경쟁적으로 시어머니에게 살뜰하게 잘 한다는 것이다.
저금통장, 적금통장을 슬쩍슬쩍 보여주는 것도 같은 전략. 돈을 매개로 자녀의 관심을 끌고, 부모 대접을 기대하는 각박한 세상이다.
그렇다고 돈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갑자기 돈이 많아져서 자녀들의 갑작스런 관심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노인들도 있다. 전혀 돈 될 것 같지 않던 시골 땅값이 치솟아 갑자기 부자가 되는 케이스들이다.
LA의 한 노인도 한국 고향의 땅이 개발되면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시간 없다던 자녀들이 노인아파트를 들락날락 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이유야 어떠하든 자녀들을 자주 보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쁨은 오히려 후회가 되었다. 자녀들이 부모의 돈을 얻어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서로 감시하며 반목하게 된 때문이었다.
인생의 황혼을 맞아 쓸쓸한 우리의 부모들에게 돈으로 효심을 사야하는 서글픔까지 보태지는 말자. 문안인사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날이 오기 전에 자주 찾아뵙고, 자주 전화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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