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일 목사의 성지탐방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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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경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후 동북부 북미대륙 밤 하늘을 지나온 비행기가 드디어 프랑크 푸르트에 도착했다. 유창한 영어외에 3개국어를 더 한다는 렌트카 회사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벌써 시간이 아침10시가 넘었다. 지체할 여유도 없이 차를 달려 북동쪽으로 달리니 구 동독 지역의 루터 유적지 아이센악 (Eisenach)에 저녁 늦게 도착하여 하루밤을 지내고 아침 일찍 인근의 바르트 벅을 방문하였다. 바르트벅 이야기는 다음 주에 하기로 하고, 다음날 가서 주일예배를 드린 종교개혁의 시발지 비텐벅 (Wittenberg)의 이야기를 먼저 나눈다.
토요일 저녁 늦게 도착하여 피로를 풀고, 주일아침 기대감으로 호텔문을 나서 루터가 섬기던 타운교회(St. Mary’s Evangelical Church)를 향해 걷는 우리 를 놀라게 한 것은 그 교회쪽 멀찌기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오르간 음악이었다. 함께 걸으시던 김목사님은 그 소리가 마치 천상의 예배소리와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음악 뿐만이 아니었다. 중세기 유럽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 즐비한 건축물들과 거리를 걷는 중에서 문득 나는 500년 전 그 곳을 수없이 지나며 걷던 나의 스승 루터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개신교인(Protestants)인 우리에게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만큼 중요한 믿음의 스승이 있을까? 이는 그날 타운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옆 자리에 앉아서 함께 예배드리던 독일 관광객 한 분과 나누던 대화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이 분은 독일 분이지만 자기도 나처럼 처음으로 그 교회를 방문했는데 자기를 루터교가 아닌 어느 복음교회 (Evangelical Church)의 신자라고 소개 했다. 나 역시 루터교인이 아닌 감리교인 이며 또 침례교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목사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자 그 분이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씀이 그러나, 우리는 다 루터를 따릅니다.
루터는 16세기 당시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향해 저들의 잘못된 신학과 교회의 관행을 바꾸어, 교회를 믿음 중심 성서적 교회로 회복하도록 온 몸을 던져 싸운 종교개혁의 선봉장이다. 그러면, 루터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루터는 1483년 11월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루터의 아버지 한스는 맏 아들인 루터가 태어나자 마자 맨스휄트로 이주 남의 공장을 임대하여 구리 제련소를 운영한다. 가정의 살림이 약간 나아지게 되자 소년 루터는 7세에 학교공부를 시작, 13세에는 집을 떠나 인근 기숙사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일종의 기독교 공동체 생활의 1년간 맛보게 된다. 1년 후, 아버지 보다는 좀 더 유복한 가정 출신인 어머니 마가렛의 교육열로 루터를 자기 친정 식구들이 있는 아이센악으로 보내 친척집에 머물게 하며 그 곳의 성 조지 교구학교에 등록을 시킨다. 2년 후 루터는 당시의 명문 에어프르트 대학교(University of Erfurt)에 입학을 하여 인문학을 공부하게 된다. 학교는 아들을 변호사로 키우고자 하던 아버지의 선택이었고 그러기에 아버지는 기꺼이 루터의 학교 등록금을 지원한다.
루터의 학교 성적은 그 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학사학위 졸업시험 에서 57명 중 30등을 하였으니. 21세가 되는 1505년 루터는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법과대학부에 등록을 하지만 몇 달 만에 곧바로 법학 공부를 포기한다.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소원 때문이었지 자신의 관심은 신학과 철학에 있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결국 같은 해인 1505년 7월 2일 부모님 집을 방문하고 학교로 돌아 오는 중 심한 폭풍우 속에서 벼락을 맞아 거의 목숨을 잃는 경험을 한다. 또 가까운 친구 두 사람의 죽음을 맞으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 잡히게 되고, 이 때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것을 결심하고 수도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루터는 이 후로 두 주일 만에 가지고 있던 책을 팔고 짐을 싸서 에어 프르트 인근 어거스틴 계열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루터의 아버지는 한 동안 루터를 아들 취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에게는 그 동안 맏 아들의 교육을 위해 투자한 것이 모두 쓸모 없게 여겨졌고, 나중에 아들에게서 자신의 노후 뒷바라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큰 절망감을 준 것이다.
루터는 한마디로 성경의 사람이다. 당시 중세기 학교와 교회의 교육 방법이 종교적 수행을 위한 엄한 규율 중심이고, 교육의 내용은 주로 지옥에 대한 공포감을 주는 등 교리적인 것들이어서 루터는 한번도 자신의 마음에 평안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루터에게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가 수도원에 들어간 직 후 수도원 다락 방 먼지 속에서 라틴어판 낡은 성경 한 권을 우연히 루터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일반 성도들은 가질 수도 없었던 성경. 심지어는 많은 목회자들도 이해할 수 없는 당시의 라틴어로 된 성경을 루터가 직접 읽게 되면서 루터는 바로 하나님 말씀이 주는 은혜의 세계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23살이 되던 1507년 수도승의 신분으로 신학공부를 시작한 루터는 벌써 이듬해인 1508년 신학교 강의실에서 성경을 가르치게 되며, 5년 후인 1512
년에는 박사학위를 받아 비텐벅 대학교 신학부 성서신학 교수로 임명을 받게 된다.
루터신학의 핵심은 칭의론(Justification by Faith, 롬 1:17)에 있다. 즉 구원은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 어떤 종교적 수행이나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점수를 따서 이뤄가는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는 것.
이런 루터의 신학은 당시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indulgences) 판매 사건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로마 성베드로 성전 재건축비 마련을 위해 독일에 파송을 받은 교황청의 사신 요한텟젤(Johann Tetzel)이 인근 지역에서 면죄부를 판매하는데, 하루는 루터의 일부 교인들까지 그것을 구입했기에 저들이 기도회(고해성사)에 나오지 않게 되었다. 면죄부를 발급 받았으니 더 이상 회개기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결국 루터에게 이 면죄부는 교회건축을 빌미로 한 교권의 남용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마치 돈으로 사고 파는 부패한 신학이요, 돈이면 다 된다는16세기 물량주의 사고의 한 단면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결국,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벅 대학교 채플(Castle Church) 정문에 95개 항목(Theses) 으로 된 대자보를 걸어서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에 대해 지적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공개토론을 제안한다.
그날 비텐벅 타운교회에서 드린 예배는 우리가 여느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예배와 다름이 없었다--단지 내가 독일어를 알아 들을 수 없었다는 것 외에는. 그러나, 그 예배가 500년 전의 그 장소에서는 내가 아직도 가슴에 느끼는 바로 그 천상의 음악소리 만큼이나 온 세계를 향해 웅장하고 새롭게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타운교회를 나와 10분 정도를 걸으니 당시 비텐벅 대학교 채플로 쓰이던 캐슬교회가 있어 들어가 보았다. 성전 안 쪽에 모셔져 있는 루터의 무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 곳을 가득 채운 순례객 행렬을 볼 때 분명 그가 500년 전에 선포한 하나님 말씀은 아직도 우리 모두에게 살아 있음을 나는 감지 할 수 있었다. 교회문을 나서며 교회 입구벽과 밖의 대문에 새겨진 루터의 95개 조문이 내 눈에 더 없이 크게 들어왔다. 루터는 그 95개중 첫 세 조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은 평생이 회개의 삶이며, 죄의 용서는 단순히 교회의 의식이 아닌 우리 내면의 진정한 회개와 이 회개가 우리의 삶 속에서 밖으로 맺어지는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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