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는 집권한 후 자기 별장을 ‘늑대 굴’이라고 불렀다. 자기 스스로 붙인 별명이 ‘늑대’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아돌프는 독일말로 ‘귀족’을 뜻하는 ‘아델’과 ‘울프’의 복합어다. ‘귀족늑대’라는 뜻이다. 자기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러나 성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히틀러’는 원 뜻이 ‘움막(hut)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름에 그 사람의 운명이 담겨 있다는 속설이 히틀러의 경우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미술 학교 입학시험에 번번이 실패하고 노숙자가 되어 홈리스 ‘움막’을 전전하던 그가 나중에는 유럽 전역을 호령하는 ‘늑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절망뿐이던 그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제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부터다. 여기서 뛰어난 용기를 보여준 그는 철십자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다. 제대 후에는 대중 연설가로 재능을 발휘하며 나치당의 총재가 되었고 독일 국민들의 지지에 고무된 그는 34살의 나이에 쿠데타를 감행하나 비참한 실패로 끝난다.
한 때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 그는 재판정에서의 명연설로 다시 대중의 지지를 회복하고 수감된 지 불과 1년 만에 특별 사면으로 풀려난다. 그가 감옥에서 쓴 ‘나의 투쟁’은 베스트셀러가 돼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 막대한 인세 수입을 안겨준다.
뜻밖의 성공에 놀란 그는 힘들게 쿠데타를 할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기로 결심하고 선거를 통해 1933년 44살의 나이에 독일 총리의 자리에 오른다. 오르자마자 ‘수권법’을 통과시켜 독일의 절대 권력자가 되며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 아는 얘기다.
21세기 초 세계 지도자 중 히틀러와 가장 비슷한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 아마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아닐까. 가난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군대에 들어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38살의 나이로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인기가 오히려 더 치솟아 2년 만에 특별 사면으로 풀려나며 1998년 44살의 나이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선되자마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헌법을 통과시킨 후 다시 출마해 또 당선된다. 그리고는 ‘수권법’을 제정, 법이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길을 연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자기 손으로 만든 헌법을 뜯어고쳐 대통령 3선 금지 조항을 없애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국가의 필요에 의해 마음대로 박탈할 수 있는 새 헌법을 발의, 지난 2일 국민 투표에 붙였다. 투표 전 차베스가 통제하는 언론은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구구히 늘어놨으며 거리는 차베스 지지자들의 시위로 메워졌다. 그럼에도 그 개헌안은 49대 51로 부결됐다. 그의 한없는 권력욕과 경제난에 염증을 느낀 시민과 학생, 한 때 그의 지지자들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차베스는 아직 히틀러같이 인종 학살과 전쟁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극우파인 히틀러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를 적으로 돌리고 빵과 복지, 위대한 게르만 민족을 내세워 절대 권력을 잡은 것이나 극좌파 차베스가 부자와 양키를 공공의 적으로 삼고 빵과 복지, 라티노 민족주의를 내세워 종신 권력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는 점은 똑같다. 주 지지자들이 실업과 가난에 시달리던 중하층민이라는 점도 히틀러와 차베스의 공통점이다.
베네수엘라판 유신 쿠데타 기도에도 불구, 한국을 포함, 반미, 반세계화, 반 시장 경제를 부르짖는 세계 지식인들의 차베스 사랑은 변함이 없다. 잘못된 이념의 노예가 된 인간에게는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만 걸면 어떤 잘못도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독재자는 항상 그럴듯한 구호로 국민들을 현혹하기 마련이다. 그걸 지적해 내는 게 지식인의 임무다. 이번 종신 집권안 부결이 세계인들이 차베스의 정체를 똑바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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