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철학과 이중표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 불교학자다. 2004년부터 3년동안 한국불교학회장을 맡았다.
그렇다고 불교를 무작정 옹호하는 불교판 관변학자는 아니다. 경전의 글귀 하나 예사로 넘기거나 허투루 흘기지 않고 철저하게 해부하고 검증했다.
불자들은 물론 철학도와 생각있는 교양인들의 필독서가 된 ‘불교의 이해와 실천’ ‘아함경의 중도체계’ ‘근본불교’ 등 저서들, 자구 하나하나를 마치 조각하듯 3년 각고끝에 정확하고 매끄러운 우리말로 거듭나게 한 번역서 ‘불교와 일반시스템이론’ 등은 결벽에 가까운 학문적 집념으로 빚어낸 역작이다.
올해 봄부터 조지아 메이슨대 방문학자로 와 있는 이중표 교수가 북가주에 왔다. 청화 큰스님-대석 스님(삼보사 주지)과의 각별한 인연에 이끌려 댓바람에 날아왔다. 멀리 있어도 불러낼 터에 제 발로 찾아온 그를 그냥 놔둘 대석 스님이 아니었다.
지난 25일(일) 오후 디앤자 칼리지에서 첫째마당을 연 ‘이중표 교수 근본불교 교리강좌’는 그렇게 멍석이 깔렸다.
“불교면 불교지 무슨 근본불교냐…”
사전홍보를 할 겨를이 없었는데도, 사찰별 일요법회와 맞물려 짬내기가 적이 버거웠는데도, 어떻게들 알고 모여든 50여명이 4시간동안 귀를 쫑긋 세운 첫날 강좌 첫머리부터 아무것도 아무렇게 안넘기는 이중표 교수의 이중표 교수다움이 날을 세웠다. 제목도 지나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회교근본주의와 같은 용어에서처럼 종교에 근본이 붙을 때 갖기 쉬운 편견이 스며들까 염려에서였다.
다른 종교에서 근본이라고 할 때는 변화를 거부하고 독선적이죠. 불교에서의 근본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유롭고 변화무쌍합니다.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제공돼 있지요.
길은 아예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탈이라던가. 팔만사천 법문이니 천백억 화신이니 하는 말이 풍기듯 어마어마한 다양성 혹은 풍부함은 이것 아니면 저것 혹은 간편주의에 길들여진 이들에게 도리어 번다함을 주고 그 틈새를 타 온갖 이물질이 불교 허울아래 준동할 수 있음을 그는 경계했다.
어떻게 된 게 불교사전이 한글사전보다 더 커요. 경전도 그래요. 너무 많아서 문제요. 팔만대장경 이거 책으로 하면 3,000권쯤 돼요, 해설까지 하면 만권쯤 될 겁니다. 그러니 너 불경 읽었냐, 이러면 무식한 질문이에요, 무슨 경 읽었냐, 이렇게 물어야지. 전공하는 나도 다 못 읽었어요.
많고 많은 길 가운데 어느 길이 그 길인가. 이를 위해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이어지는 그의 비유적 해법 또한 명쾌했다. (길을 가다가) 길을 잃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 갑니까. 예, 처음으로, 출발점으로 가봐야 돼요. 근본불교는 불교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지금 이 시대에.
이 대목에서 그는, 불멸(佛滅)후 수백년 지나 대승불교가 흥기하면서, 특히 중국에서 이 사람이 이 살 붙이고 저 사람이 저 살 붙인 경전들이 널리 읽히면서, 정작 부처님이 생전에 실제로 한 말씀이 알알이 담긴 아함경을 소승경전 취급하고 천시하는 풍조가 생겨난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중간휴식 뒤 불교의 목적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막연하게 도 닦으면 도가 터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부처님이 뭘 가르쳤는지 별 관심도 없고 그저 지 생각대로 믿고 앉아있으면…마치 빈 땅에 사다리를 놓고 지붕에 올라가려는 사람들과 같다고 질타한 이 교수는 부처님이 일곱살 때 목격한 농경제 예화, 청년기 때 동서남북 성문으로 나가 목도한 네가지 풍경(사문유관) 등을 곁들이며 불교의 목적은 성도, 성도의 목적은 일체중생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혼자 생로병사 벗어나 해탈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성도하자마자 발벗고 돌아다닐 까닭이 없잖아요. 부처님은 내가 얻은 이 행복과 기쁨을 나눠야 한다,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그래서 보리수 아래서 일어선 거여.
행복을 위해서는 진리에 대한 정견(正見)이 필요하고, 정견을 가지고 자아를 관찰할 때 불교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설명이 굴비처럼 엮여졌다. 연기(緣起) 팔정도(八正道) 중도(中道), 고집멸도(苦集滅道), 무아(無我), 오온(五蘊) 등등 다 아는 듯하면서도 그 본질을 헛짚기 쉬운 용어들을 설명한 이 교수는 깨달음 내지 성불에 안달하는 풍조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성불할 것도 없어요.
본래 부처인 줄 아는 거여. 앞서 그는 부처님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한 적도 없고 갈 수 없는 곳을 가라고 한 적도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왜 현실은 안 그럴까. 이 교수의 진단은 범부들의 급소를 곧바로 겨냥했다. (무아 개념이 어려운 게 아니라) 무아로 살기가 쉽지 않지. 미운 놈 많지 뭐 많지… 뒤집으면 쉬운 삶이었다. 나를 버리는 것인데 남에게 봉사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버리는 것이 있겠습니까?
올림픽 100미터 금메달을 다투는 태풍의 사나이들이 10초도 안되는 뜀박질 자체보다도 출발선에서 레인과 스타팅 블록을 점검하고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는 데 훨씬 긴 시간을 투자하듯, 출발선에서 불교 바로보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첫날 강의의 대부분을 할애한 이중표 교수는 12월2일(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같은 장소(De Anza College S34, 21250 Stevens Creek Blvd., Cupertino, CA 95014)에서 비로소 불교교리의 구조에 대해 심층강의를 잇는다.
이날 끝나는 이중표 교수 북가주 특강은 삼보사와 학이시습회가 더불어 마련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기타문의 :
삼보사(831-236-0862) 학이시습회 이윤우 법사(650-493-7310/650-380-8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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