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던가,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거리마다 노란 은행잎 날리는 서울 거리를 그리워하게 된다.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쪽으로 넋 놓고 걷다가 헌병과 사복경찰의 저지를 받아 인사동 쪽으로 발길을 옮기던 날도 거리의 낙엽이 인상적이었다. 싱싱하고 깨끗한 낙엽들을 쓸어버리기 아까워서였을까? 한국에서 생활하던 가을 어느날 나라에서는 거리의 청소를 한동안 멈췄던 기억이 난다.
신선한 노랑의 물결에 홀려 거리를 한시간 넘게 계속 걷다가 성균관 대학을 따라 혜화동에 이르던 것이 엊그제 같다. 그 거리가 이제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바쁜 LA 생활 중에 한 잔의 차를 마시다 문득 기분 좋은 백일몽에 젖어본다.
정겨운 인사동 전통찻집, 활기 넘치는 혜화동의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은 추억 속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이맘 때면 튀어 나온다. 혜화동의 크고 작은 소극장들은 일년 365일 가수들이며 연극인들의 공연으로 쉬는 날이 없었다.
한국에서 살면서 알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이 공부만 열심히 하는 민족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민족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즐길 줄 아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거리에 걸린 수많은 문화 행사 포스터 만 보아도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인들의 실력 또한 수준급이라 뿌듯했다. 외국의 유명 예술인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어림도 없다며 겸손해 하지만 그들 속에는 한국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얼과 신명이 살아 있고, 다른 언어로는 번역되지 못할 우리만의 맛깔스런 진국이 담겨 있었다.
가을이 되면 그 예술인들이 그립다. 그들의 예술을 맛보기 위해서라도 훨훨 날아 한국을 다녀오고 싶다. 하지만 직장에 몸이 묶였으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얼마 전 희소식을 들었다. LA에서도 20년 전부터 한인연극인들이 어렵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업이나 사회단체의 도움 없이 비영리 단체로 운영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비누하스 극단(대표 배세진), 모임 극회(대표 김영란)등이 그들이다. 모임 극회의 ‘빈방 있습니까’는 벌써 3년을 거듭 공연하여 꽤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6번 LA 소극장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미주 순회를 기획하고 있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이 작품을 대하였지만 연기자들의 숨은 끼가 마음껏 표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주 한인의 정서를 담아 이민사회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빈방 있습니까’를 보며 관객들은 2시간 내내 마음껏 웃고 울며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아쉬운 것은 문화생활이다. 대부분 한국에서 만들어진 TV 드라마에 정서적으로 의존할 뿐 미주 한인들이 만들고 미주 한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의 공간은 많지 않다.
이번에 내가 본 연극도 4일 만에 LA 공연을 끝낸 것이 아쉬웠다. 기업이나 단체들이 문화사업을 후원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연극 등 한인 예술인들의 모임과 활동이 미주에서도 빛을 발하여 우리를 정서적으로 부유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꾼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토마스 오
소셜 워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