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멕베스’는 실패한 걸작이었다. 표현이 다소 역설적이지만 ‘멕베스’의 초연 당시 이 작품을 이해한 관객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이 위대한 명작이 훌륭하게 연주되는 예는 별로 없고, 또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예도 드물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실패한 작품을 걸작이라고 부르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은 아마도 인간 예술이 줄 수 있는 가장 야성적이고도, 무의식의 세계를 표출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 작품을 듣고 있으면 모골이 송연해지며 이성으로는 어쩔 수 없는 본능의 광기,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는 데 이는 문자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그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는 약관 34세 때 셰익스피어의 명작 ‘멕베스’를 오페라화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미 ‘나부코’ 등 종교적인 작품을 다루던 베르디가 왜 갑자기 이 어둡고도 음험한, 피비린내 나는 작품에 손대고 싶은 충동이 일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멕베스’라는 작품을 통해서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떤 파괴적인 일면, 어둡고도 부정적인 면을 파헤치고 싶었던 충동이 일었던 것 만은 분명한 듯 하였다.
극음악의 귀재 베르디는 ‘오델로’, ‘팔스타프’ 등 셰익스피어에 관한 한 탁월한 극적 감각을 과시한 바 있는 데 특히 ‘멕베스’에서 원작(셰익스피어의 희곡)보다 한 수 더 뜨는 마녀들의 귀기, 야망으로 가득 찬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그려내 ‘이태리의 악신(음악의 신)’이라는 칭호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1847년 피렌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우수했으나,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던 나머지 극적인 전개가 자연스럽지 못했고, 지나치게 심각하여 관객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광기, 탁월한 심리묘사는 전문가들에게 절찬 받았고 공연이 지속될수록 원작(연극)보다도 극적인 맛이 탁월한 이 뛰어난 작품에 세계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야망으로 파멸해 가는 멕베스의 심리묘사도 일품이지만, 그 야망 앞에서 동시에 허물어져 가는 멕베스 부인의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악(욕망)에 무력한 존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멕베스가 덩칸(왕)을 죽이고 장송행진을 벌이는 정점에서는 급기야 베르디의 야성이 폭발… 삶과 죽음, 야망과 공포, 찰라와 영원… 그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절규를 베르디 만의 특유한 선율로 수놓게 되는 데…,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극, 베르디의 야성이 합쳐져 오페라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장관으로 사람의 뇌리를 강타한다.
SF 오페라에서는 지난 14일부터 베르디의 ‘멕베스’를 공연 중이다. 공연 수준은 B 마이너스로 평가 받았다. 레이디 멕베스 역의 소프라노 조지나 루카스의 노래가 형편없었고 무대 또한 의상과 배경이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다.
피비린내 풍기는 음험한 연출, 마녀들의 귀기가 실종… 밋밋한 공연에 그치고 말았지만 합창단의 우렁찬 목소리… 멕베스 역의 바리톤 토마스 햄슨의 뛰어난 가창력이 그나마 공연을 살리고 있다. 이 작품은 12월 2일까지 공연되며, 공연스케줄, 입장료 안내는 www.sfopera.com으로 검색해 볼 수 있다.
<이정훈 기자> jungmus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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