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살다보면 진짜 연극이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지난달 TV 화면을 통해 남가주의 불길을 바라보며, 한 순간에 깨어날 수 있는 꿈이었으면, 막이 내리고 관객이 박수를 치면 모두 허구가 되는 한 편의 연극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모두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마켓에 다녀오다가 산불로 길이 막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동생 집으로 대피했다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온통 잿더미로 변한 삶의 터전에서 무엇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TV로 확인하면서, 소중한 누군가를 불길 속에서 잃어야 했던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 곳이 모두 불타 사라진 지금 그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가슴 아픈 현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매 순간순간, 나는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 인생을 연주하는데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을 조금 바꾸어 “인생은 연주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를 했다고 해도, 또는 잊고 싶을 만큼 형편없는 연주를 했다 해도 그 순간을 붙잡아둘 수는 없다. 환희에 찬 순간도, 고통스런 순간도 시간에 따라 흘러가버리는 것이 음악이고, 우리의 인생이다.
무대 위에 서면 나는 종종 식은땀을 흘린다. 꾸준한 연습과 철저한 리허설, 최선의 집중력으로 준비하고 연주를 한다 해도 모든 연주가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내 경험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음악인들 역시 무대 위에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했다.
살다보면 수많은 경쟁을 해야 하고 그때마다 남보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과도한 경쟁 속에서 반칙을 하기도 하고, 상대를 비방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의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일까? 마이크 타이슨처럼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어서라도 이기는 것이 성공하는 것일까?
인생은 연극이자 연주다. 우리는 그저 한 편의 연극이 끝날 때까지, 한 곡의 연주를 마칠 때까지 열심히 달릴 뿐이다. 그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희극 배우가 될 때도 있고, 눈물의 비극 배우가 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일본계 바이얼리니스트 미도리의 연주회가 생각난다. 무대 위에서 연주 도중 바이얼린의 줄이 끊어졌을 때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관객에게 미소를 지으며 양해를 구한 뒤, 미리 준비해 놓은 줄을 갈아 끼우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주는 이전보다 더 훌륭한 연주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를 ‘작은 거인’이라 부르며 제자들에게 그 장면을 이야기 해주곤 한다.
때론 뜻하지 않은 일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넘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달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산불로 인해 뜻하지 피해를 입은 이들이, 힘든 상황 속에 놓인 우리의 이웃들이 다시 일어서기를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응원한다.
앤드루 박 /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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