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한 선배와 이런 논쟁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인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인가. 물론 그 둘이 딱 맞아떨어진다면야 고민할 이유가 없다. 고민을 하는 것은 바로 그 두 가지가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의사가 어느 날 가운을 벗고 식당을 한다던가, 회사원이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한다던가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보다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꿈을 버리기 힘든 경우들일 것이다. 한편 때로는 잘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꿈을 좇아 현실을 떠나는 예도 있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은 ‘하고 싶은 일이 항상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정황에서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참 미래를 고민하고 사회에서 역할을 준비하는 시기에 정확한 지침으로 받아들여졌었다. 하고 싶기도 하고 잘 하기도하면 금상첨화지만, 사실 살다보면 그렇게 톱니가 잘 맞지 않아 고민하게 되지 않는가.
내가 처음 광고회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겁 없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광고만 하겠다’고 했다. 면접하던 회사임원은 웃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광고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이건 내 일이 아닌가보다’ ‘난 능력이 안돼’라는 생각으로 수없이 고민했었다. 그러나 ‘배운 도둑질’이라는 말 그대로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다.
잠깐 광고 일을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데드라인, 야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것에 마음이 홀가분했다. 새로운 일을 찾아보리라 마음 먹고 여기저기 전혀 다른 분야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걸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같지가 않았다. 그때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생각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광고 하나 라는 것이었다. 이름을 세상에 날릴 만큼 잘하지는 못해도, 어디 가서 욕먹고 쫓겨난 적도 없고, 잘했다는 칭찬도 듣고, 상도 받아봤고, 무엇보다 안하고 쉬고 있으니 광고가 하고 싶어 죽겠는걸 보면, 아무래도 나는 ‘잘 할 수 있는 일이 광고’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광고 빼고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적성검사니 커리어테스트를 받아보기도 했다. 그 결과는 뻔했다. 창의적인 일, 그 중 하나는 광고인 여러 직업들이 내 커리어 테스트의 결과였다. 어쩌면 의심하고 회의했던 시간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한 선배 카피라이터는 광고가 싫어서 회사를 나가 사업을 하다가, 다시 광고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광고를 너무나도 열심히 했다. 도저히 광고가 싫어서 나간 사람 같지가 않았다. 나가보니,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좋아했는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를 깨달았던 것 아닐까. 또 한명의 카피라이터는 어느 날 일을 그만두고 베트남에 가서 베트남 요리를 배우고 책을 냈다. 이제 그의 커리어는 더 이상 광고 일이 아니다. 드디어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좋아하는 일인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확신이가지 않을 때, 떠나보면 대답은 명확해지는 것 같다. 다시 돌아오던지, 아니면 영영 바뀌던지. 그러나 나는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생계를 위해서는 하지 말라”는 누군가의 말을 마음 깊이 묻어두고 있다. 생계를 위해 일하기시작하는 순간, 그 일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는 말, 앞으로 나에게는 그것을 찾아낼 과제가 아직 남아있다.

유정민 / 텐 커뮤니케이션스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