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102년전 세웠던 교회 다시 복구한다
하와이의 카와이연합감리교회, 미 한인연합감리교회서 재개척 나서
카와이교회 1905년 현순 전도사 창립,섬의 한인들에 복음전파 1942년 문닫아
이글은 1905년 한인 이민 선조들이 세웠던 하와이의 카와이(Kauai) 연합감리교회 재 개척을 위해 한달간 임시 담임 목사로 봉사하고 돌아온 유석종 목사가 쓴 것이다.
감리사로 시무하다가 은퇴한 유석종 목사는 미 연합감리교회 서부지역한인선교구의 주선으로 지난 7월 한달간 하와이에 가서 봉사한후 돌아왔다. 미 서부한인선교구는 여러 목회자를 교대로 파송하여 교회 재 개척에 나서고 있다. <편집자 주>
필자는 지난 7월 한 달간 하와이의 카와이(Kauai) 섬에 보냄을 받아 새로 설립된 카와이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임시 담임목사로 봉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연합감리교회 서부지역 한인 선교구의 주선으로 창립되었으나, 역사적으로 따지면 1905년에 창립되어 1942년까지 지속되었다가 폐쇄된 한인감리교회가 다시 복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와이 섬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카와이(Kauai) 섬은 100여년 전 초기 이민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생활 터전이었습니다. 한 때는 농장의 일군들과 사진 신부로 들어온 부인들까지 합하여 카와이 섬의 한인 인구가 2천 내지 3천 명에 이른 적이 있었고, 이들을 위한 기도처가 수처에 세워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특기할 만한 일은 1903년 부인과 함께 제 2차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에 도착한 현순씨를 통한 카와이 한인 선교 및 목회활동입니다. 현순씨는 일찍이 구한말 육영공원에서영어를 배우고 일본에서도 교육을 받은 선각자로서, 그가 다니던 감리교회의 선교사 주선으로 하와이 이민단의 통역으로 발탁되어 하와이에 오게 되었습니다.
1904년, 현순씨는 한인 이민자들 중에 장차 감리교의 지도자가 될 만한 젊은 인재를 찾아 육성하려던 와드만 감리사에게 뽑혀 몇 달 동안 전도사로 경험을 쌓았는데, 그 때 현순씨는 이민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야학을 시작하였으며, 이 학교는 후에 큰 규모의 2세 교육시설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905년, 현순 전도사는 가족과 함께 카와이 섬으로 이주하여 말을 타고 다니며 섬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하였으니, 그 섬 안에만도 기독교 신자가 수백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순 전도사는 예배 후 교인들을 모아놓고 세계 소식을 전해주었고,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하였으며, 자녀들에게는 자랑스런 한국인의 얼과 전통을 심어주었고, 미국인 지주들의 도움으로 카파이아에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를 건설하였습니다. 1906년에는 현순 전도사의 주선과 지주들의 도움으로 카파이아 벌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한인 예배당이 건축됩니다.
1907년, 현순 전도사는 가족을 데리고 조국으로 돌아가 배제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정동제일감리교회와 상동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감리교 협성신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었고 장로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현순 목사는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에는 들지 않았으나 3.1 운동의 계획과정부터 참여하였으며, 그 후 임시정부의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영어에 능숙한 그는 해외에 파견되어 임시정부와의 연락업무를 수행하였는데, 1921년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레닌을 만나 소련의 원조를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후 5년에 걸쳐 민족운동에 몸바쳐 일하던 현순목사는 자신의 본무인 성직자로서 교회 목회로 돌아왔는데, 호놀루루의 제일감리교회(현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 2년간 근무하고 1926년부터는 그가 초기에 목회하던 카와이 섬에서 1940년 은퇴하기까지 14년간 목회를 하면서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기금을 모금해 보내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습니다. 1936년 감리교회 보고서에 의하면 카와이 섬 전역에 교인수가 220명이었고, 주일학교 학생은 120명, 그리고 두 개의 청년회 회원이 40명에 이르렀습니다. 현순 목사는 1963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받았고, 1968년 8월 11일 로스앤젤레스 양로원에서 별세하여 그의 유해는 1975년에 한국 국립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현순 목사가 은퇴한 후 카와이 섬의 한인 인구가 감소됨으로 1942년에 한인감리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고, 사용하던 건물은 필립핀 교회로 이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오늘 카와이 한인 인구는 증가 추세에 있으며 교포들의 영적 요구가 커짐에 따라 한인감리교회가 다시 재건을 보게 된 것입니다. 현재 카와이 섬에는 초기 이민자들의 후손들과 일본인, 필립핀인, 중국인, 백인들과 국제결혼한 분들, 본토에서 은퇴하고 들어온 가족과 직업을 따라 이주해 온 한인들, 합하여 한인 인구가 약 2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희로애락과 애국정신이 깃든 카와이 섬에 다시 재건되는 교회를 통해 그곳 동포들이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어 지역사회에서 등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유석종 목사. 연락처 707-864-6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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