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脚下)
이윤우 법사/잔 대불련 회장
발 밑을 각하라고 하는데 당신의 발 밑이란 뜻으로 높은 사람을 존칭해서 각하라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아첨잡배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각하라는 말을 너무 남용하여 지금은 기피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서양에서는 늘 <지금 여기>라는 말로 번역 표현이 되어 무슨 인생살이의 지침이라도 되는 듯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또는 명상적 명제가 되기도 한다.
원래 이 말은 <조고각하>라는 의현 스님의 선문답에서 나온 말이다. 의현 스님이란 임제종을 건립하신 저 유명한 임제 스님이시다. 도(道)가 무엇이냐고 묻는 길손에게 <당신의 발 밑을 살피시오> 하고 내뱉은 말이다. 발밑의 웅뎅이나 돌뿌리를 살피고 조심하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발밑이란 나를 떠받들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항상 나와 같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언제고 어디서나 나와 동행하는 것은 마음 뿐이니 조고각하란 <당신의 마음을 살피라>는 것이 임제 스님의 속마음이다.
도와 부처를 바깥이나 먼 곳에서 형이상학적으로 또는 관념적으로 또는 어떤 대상물에서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부처님 이래 불교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금지되어야 마땅한 장난에 불과하며 하나도 쓸모없는 노력이며 따라서 헛된 인생살이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예스. 예스. 투 예스!
<그대가 만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자 한다면 모든 것은 마음하기 마련임을 깨닫는 것이다. (화엄경)>
마음 먹는대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삶은 마음이다. 늘 어디서고 동행하는 마음을 (각하) 비추어보고(조) 뒤돌아보며(고) 사는 것이 삶이란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다. 남편에게는 마누라가 있고 마누라에게는 남편과 자식이 있다. 미국에는 돈이 있고 아프리카에는 돈이 없다. 산중은 첩첩하고 바다는 망망하다. 그러므로 사바세계에서 마음 하나로 살아남고 행복해진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망상이다.
상대가 있다는 것, 나 외에도 뭇 삶이 있다는 것, 일체는 나와 다르고 같이 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상대적인 세상에는 나도 남도 다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빠뜨리면 대망상이 되는 것이다. 망상이란 달콤한 것이기 때문에 다 빠져드는 것이지만 부득이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망상 없는 생각을 지혜라고 한다. 이 지혜를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도(道)라고 이름해 왔다.
불교에서는 이 도를 깨달음이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천하에 제일 쉬운 것 아닌가. 무슨 절대성을 가진 깨달음이 있다고 믿고 그걸 찾는 것이 수행인 양하는 것은 사이비다. 관념이므로 망상이다. 옛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들어보자.
어느 배우는 이가 조주 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도(道)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단도직입적이고 당찬 질문에 심상찮게 지나가는 말투로 정식답변이 아니고 그냥 중얼거렸다. <길은 저 담장 밖에 있지, 아마.> 학인(學人)이 다시 다그쳐 묻되 <그런 길 말고 대도(大道) 말입니다.> 조주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대답하되 <큰 길은 이런 시골에는 없어. 서울에 올라가 봐.>
정말 어쩌자고 모두들 대도(大道, 큰 깨달음)를 얻는다고 설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길 없는 길을 도(道)라 하고 길 있는 길을 로(路)라고 한다. 원래 없는 길을 길을 내어 가는 것이 도로(道路)다. 이렇게 도로를 내는 일은 너무나 막중하여 국가가 나서서 도로공사를 세워서 막대한 돈을 쓴다. 불교도 결국은 도로공사에서 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마음을 살피고(道- 길 없는 길) 삶에 지혜를 보태는(路) 작업이니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는 달리는 기분이 좋다. 정말 좋다. 큰 들판을 가로지르고 높은 산 험한 고개를 넘으며 도시들을 가르며 달리는 풍광은 큰 감동이다.
이 가을에 대도(大道)와 소로(小路)를 많이 가 보자. 음악도 듣고 동행한 사람과 담소도 하며 창 밖을 내다보고 산하와 눈도 맞추어 보자. 마음 길을 따르면 이리 즐거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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