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그 참을 수 없는 유령의 가벼움에 대하여
유령의 정치적 메타포어와 상품화
1. 할로윈이다 -유령의 정치학
카를 구스파프 융에 의하면, 유령이란 집단적 무의식이 만들어낸 무의식적 원형의 소산이며 상징의미이다. 풀이하면, 유령은 한 민족과 시대가 공유하는 일정한 사고방식과 상징체계에 의해 인격화된 무의식적 상징이며, 문화적이며 심리학적 장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령의 흰옷,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 창백한 얼굴과 같은 이미지들은 유령에 대한 하나의 문화적 투사로서의 집단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어쨋든, 다양한 문화적 집단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유령의 이미지는 분명히 가공된 것이다. 이처럼 순수하게 집단적 무의식을 반영하던 유령이라는 이미지 속으로, 매카시즘과 냉전의 논리를 반영한 정치적 의미와 세계 자본주의 시대의 상업논리가 미끄러져 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유령 이미지들은 변모하기 시작했다.
지난 수십년 간, 세계 각국의 다양한 유령 집단들은, 족보학과 계보학, 문화 인류학과 정치 지리학적 영역을 넘나들며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 메타포어로 재탄생해 왔다.
냉전시대 <드라큘라>에 반영된 동유럽과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타자화의 정치적 메타포어가 그러하며, 할리웃의 수많은 스릴러 무비들이 슬쩍슬쩍 내비치는 보수주의적 시각이 그러하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아직도 알고 있다>라든가 <13일의 금요일> 등, 수많은 할로윈용 영화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들은 단지 억압된 대중들의 무의식과 두려움에 대한 자극 이상으로서, 미국 정치의 오랜 화두이며 골칫거리인 보수주의의 복수이자 린치이고, 정상성과 겸손을 위반하는 욕망의 분출에 대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기성계층의 단죄이다. 영화 속에서 유령 이미지로 재현되는 보수주의자들은 제이크의 탈을 쓰고 도끼와 체인소를 휘두름으로써 금기를 어긴 망나니 자유주의자들을 심판의 단두대 위에 세우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이러한 유령 이미지의 영역 확장이 동시에 어떤 이미지들의 죽음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대체로 작고 국지적이며, 전통적이고 원형적인 상징과 무의식적인 이미지들이 사라진 덩빈 유령 속에는 정치적 프로파 겐다만이 남아, 결국 하나의 거대한 정치용어로 변모하고 말았다.
2. 뱀파이어와 공산주의의 메타포어
에르네스트 만델은, 그의 저서 <즐거운 살인>에서, 폭력을 이상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극도로 불길한 징조이다. 이 산물들은 이런 종류의 폭력을 지켜주고 정당화해주며, 파시스트가 되기 이전의, 혹은 파시스트의 원형에 가까운 내용들을 담게 될 것이며, 명백히 외국인을 혐오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공격을 차례차례 불러일으킬 것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유령의 이미지는 종종 이러한 살인과 폭력적 이미지의 과장과 왜곡을 통해 파시스트적 정치 팜플랫으로 이용된다.
정치적 팜플랫으로 변모한 유령은 이제 더 이상 이미지도 가상현실도 아니거니와 원전적 의미조차 사라진 단순한 문화 전쟁용 무기가 된다. 그리고 이 지점에 뱀파이어, 혹은 드라큘라라는 동유럽 변방의 가여운 유령이 슬쓸하게 서 있다.
트란실바니아의 국경 칼바치아 산맥 드라큘라 성의 후미지고 어두운 공간에서 수백 년간 잠들어 있던 드라큘라 백작이 깨어나게 된 것은 동구의 공산주의 사상이 젊은 지성들에 의해 서구 사회로 물밀듯 유입되는 시기인 전후 매카시 선풍 및 냉전시대와 맞물린다.
1922년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 와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 헐리웃의 호러 전성시대에 탄생한 벨라 루고시의 1931년판 <드라큘라>이후 조용히 잠들어 있던<드라큘라>는 헐리웃의 발빠른 상업자본가들에 의해 빅스크린으로 복귀하게 된다.
1897년 브램 스토커의 소설 속에서 묘사된 <드라큘라>는 고전 노스페라투에서의 약간은 우스꽝스럽고 악동같은 이미지를 벗고, 검은 망또와 연미복, 트랜실바니아 악센트, 거부할 수 없는 섹스 어필 등과 같은 공격적인 남성성으로 환골탈퇴하게 된다. 서구의 젊은이들을 매혹시키는 동유럽의 공산주의 사상의 이미지를 육체 이미지를 통해 재현하고 있는 이 매혹적인 드라큘라에게 헐리웃은 ‘전염’이라는 치명적인 의미를 부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드라큘라 백작에게 매혹된 여성 희생자들이, 서구의 ‘배부른 망나니’같은 젊은이들이라면, 공산주의의 재현인 드라큘라에게 매혹되어 피를 빨린 순간 그들은 흡혈귀, 즉 공산주의자로 재탄생하는 지독한 ‘전염’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이들 전염된 흡혈귀들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서구 사회를 더욱 광범위하게 전염시킴으로서 서구사회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유포하는 데에 있다.
수잔 손탁이 언급한 바, 전염의 메타포어란 사상과 이론과 문화 전반을 생물학적 메타포어와 연관시킴으로써, 금기와 터부의 효과를 창조하는 강력한 생물 정치학의 일종이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질병은 ‘전염’이라는 경과를 거칠 때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전염의 대상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전염이라는 과정을 거쳐 전염자와 동일화하는 것이다. 에이즈 속에 전염, 혹은 감염이라는 의미가 스며들자 곧, 에이즈 환자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전염은 강력한 타자화와 증오와 거부감을 형성하는 최고의 기제가 된다. 결국, 섹스어필하던 드라큘라는 ‘전염’행위의 진원지, 즉 서구의 몰락과 인류 파괴의 진원지라는 비인간적 이미지로 고착되고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서방세계는 밀려드는 동구의 공산주의 사상에 드라큘라라는 메타포어를 이식, 공산주의 사상의 강력한 전염성과 위험성을 경고했고 그것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드라큘라는 결국, 냉전 시대 서방세계의 동유럽과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정치학적 해석을 유령과 질병과 전염이라는 의미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 낸 하나의 문화적 재현물인 것이다. 냉전시대, 선과 악의 선명한 대립 구도를 통해 타협 불가능한 두 개의 세계를 재현하는 드라큘라 백작과 반 헬싱교수는 각각 동유럽과 서방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며, 특히 지독한 악한이자 전염의 숙주인 드라큘라, 혹은 서방 세계에 대한 카운터 파트로서의 공산주의는 언제나 편집증에 사로잡힌 욕망, 완벽한 기술을 동원한 계획, 지칠 줄 모르는 허영, 육체적-물리적 남용, 도덕적 도착증 등으로 재현된다.
3. 참을 수 없는 유령의 가벼움
냉전 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드라큘라의 강력한 이미지는 탈냉전 시대 속에서 하나의 카스튬이자 상품으로 재차 변모하게 된다. 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대동단결하던 근대주의자들의 시대가 지나고 나자, 유령들의 정신과 존재감은 더욱 가벼워지고 있다. 전염의 무기였던 드라큘라의 송곳니와 검은 망토와 기름 바른 검은 머리는 이제, 하나의 고전적 클리쉐에 속한다.
할로윈이 되면 거리엔 어린 트라큘라들로 넘쳐 나지만 그것은, 무엇이든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뻔뻔한 미국적 자본주의, 철학이 쏙 빠진 신경제체제의 숨겨진 폭력성이 재조해 낸 일회용 ‘상품’일 뿐이다.
이제, 한 없이 무거운 정치적, 문화적 상징을 그림자처럼 이끌고 다니던 세계 각국의 유령들조차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대중의 욕망의 실현과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소비되는 이미지 산업의 일종으로, 싸구려 상품으로 변모될 뿐이다.
유령들의 이미지는 이제 더 이상 정치적 힘들을 지니고 있지 않다. 나는 정치보다 사상보다 더욱 강력해진 자본의 논리에 새삼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집집마다 프론트 야드에 메달려 저홀로 흔들리는 가여운 해골과 각종의 유령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해 본다. 세상의 모든 유령들이여 궐기하라.
<정영화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