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줄 똑바로 서!”
학생들에게 나는 야단을 친다.
“두 손을 다리 옆에 붙이고!”
합창 공연을 며칠 앞두고 학생들과 한바탕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줄을 똑바로 서고 무대 위에서 가만히 서있는 것을 연습하는 동안 여러 번 타이르고 야단을 쳐도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며 산만하다. 노래 실력은 그럭저럭 괜찮은 데 줄 서고 무대에 서 있는 훈련은 일주일 내내 해도 진전이 별로 없다.
지난 10년 동안 도심에 있는 중학교에서 합창음악을 가르치다보니 이 학생들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12살 에서 14살짜리 틴에이저들에게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벌이나 마찬가지이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낄낄거리며 웃고,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고 교사의 지시를 우습게보며 아주 천천히 따르거나 아예 무시해 버리는 학생도 가끔 있다.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자니 내 목이 아프고 평소 나보다 더 크게 소리 지르는 부모님들 밑에서 자랐으니 아무리 무섭게 소리를 질러도 별로 반응도 없다.
어떤 날은 음악과 노래를 가르치는 시간보다 말 안 듣는 학생들 야단치는 시간이 더 길다.
가끔 친척이나 친구들이 왜 그런 곳에서 고생을 하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할수 있다. 그 학생들에게는 좋은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틴에이저인 이들은 가끔 어른이 들어도 낯 뜨거운 노래들을 듣는다. 많은 학생들은 욕이 가득하고 폭력적인 가사의 랩이라든가 성적인 암시가 담긴 노래를 듣는다.
내 교실에서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고전음악을 틀어 놓으면 개중에는 미치겠다는 듯이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경우도 있다. 베토벤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학생들은 영화에 나오는 개라고(베토벤이라는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당당히 대답한다. TV나 영화에서도 수준 높은 음악 듣기가 쉽지 않으니 이 학생들이 아는 것은 대중음악밖에 없다.
매년 합창반 학생들에게 모차르트나 헨델의 합창곡을 하나씩 가르치려고 노력하는데, 노래를 가르치기가 상당히 힘들다. 노래가 어려운 것보다도, 학생들이 이 노래를 배우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보면 비트도 없고 복잡하고 따분한 노래들이니 재미가 없다며 배우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나는 반은 협박, 반은 타이르면서 이 노래는 참 좋은 곡이니 배우고 나면 마음에 들거라며 끝까지 가르친다.
잘 하던 못하던 칭찬과 격려를 하며 노래를 가르친 후 발표회를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들이 싫어하던 노래가 이제 제일 좋다며 다시 한번 부르자고 부탁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 음악 선생으로서 제대로 가르쳤구나!” 하는 보람을 느낀다.
나의 가르침이 내 학생들의 음악 듣는 습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이 어떻게 보면 그 학생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가끔 나를 가르치셨던 음악 선생님들을 기억하며 어떻게 계실까 궁금해 한다. 미국에 와서 제일 처음 배웠던 곡, 발표회들, 같이 노래하던 친구들도 생각이 난다.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가르쳐서 10년, 20년 후에 학생들이 기억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렇게 노력하며 나 자신을 격려한다.
서재필 /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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