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한국에서 외국인 아닌 외국인 대접을 받으며 생활했던 연세대 가을학기 교환학생 시절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나는 한국말은 했어도 어려서 이민 온 탓에 한국 문화에 완전히 적셔있지 않은 일명 ‘바나나’ 의 복잡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북남미 등 전 세계에서 왔고 이들과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다민족이 사는 LA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나는 남들보다 빨리 친구들을 사귀었고 한국말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리더가 되어 식사 때면 신촌거리를 투어가이드처럼 외국친구들을 몰고 다녔다.
우리의 30~40명의 젊고 활기찬 외국인 대학생들은 어디서나 환영을 받고 인기를 끌었으며 곳곳에서 특별 대접을 받았다. 어느 식당에선 서비스 음식들을 주고 나서도 끝나고 계산해보면 가격까지 할인해 주었다. 음식은 항상 풍성했고 젊은 층을 상대로 영업하는 지역이라 이미지 향상을 위해 우리 쪽 외국인 고객을 적극 유치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학생들 중에서도 유럽의 백인들과 일본인들이 인기를 끌었고 출신 국력별로 사람들이 차별을 하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와 같이 6개월을 절친하게 지낸 독일 태생의 혼혈 친구의 생일파티는 더욱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 쪽을 닮아 머리와 눈은 검고 아버지 쪽을 닮아 서양인의 독특한 눈과 코를 가진, 배우 알랑 들롱과 비슷하게 생긴 친구였다.
식당주인에게 그 친구의 생일이라고 하니 식사 후 샴페인을 터트려 그의 몸에 쏟아 부어주었다. 식당 안은 노란머리 파란 눈의 학생들과 외국어를 하는 학생들로 붐볐고 그 분위기에 다른 손님들도 왠지 들떠서 같이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반겨주는 한국인들의 따스한 친절에 외로움은커녕 스타대접을 받았다.
그러던 중 학기말이 되어 서로 헤어질 때가 되었다. 우리들은 각기 고국으로 돌아가는 아쉬움을 안고 샤핑에 나섰다. 모두 한국생활에 익숙해져가는 때라 다른 친구들을 떼어놓고 ‘알랑 들롱’과 단둘이 모험을 해봤다. 지하철 시설이 워낙 잘되어있는 한국이라 외국인 학생들도 불편이 없었다.
동대문 쪽 청계천 근교에 가면 물건이 싸다는 이야기에 그리로 찾아갔다. 친구는 독일 사람들의 투철한 절약 정신 때문이었는지 독어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모은 알뜰한 친구였다. 그리고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을 배워 용감히 한국말에 도전하는 초급 한국어 학생이기도 하였다.
물건을 보기위해 여러 상점을 돌았는데 상점 주인들의 무뚝뚝한 모습이 뜻밖이었다. 상인들의 불친절한 태도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저편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나의 친구의 모습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상인들은 친구를 인도나 필리핀계의 노동자로 취급하고 있었음을 순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최악의 생활환경에서 최악의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후에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출신 국가에 따라 국빈대접을 받는가하면 하인 취급을 받기도 하는 나라가 나의 조국 한국이었다는 것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외국 대학생들을 몰고 거리를 누비며 으쓱했던 나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통일의 날이 가까워 온다는 기대를 가져 보지만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가난한 북한 동포들을 장차 남한 국민들은 어떻게 대접해줄 지 자못 걱정이 된다.
토마스 오 소셜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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