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관조, 모던한 감각으로 형상화
‘유리창’작품해설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 시인이다. 그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시적 대상에 대한 과도한 감정의 투사 없이 그것을 선명한 이미지와 절제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의 이러한 면모는 1920·30년대 시단의 한 주류를 형성했던 김소월이나 김영랑류의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다른 시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가 지향한 이 새로운 시적 흐름을 이미지즘 혹은 모더니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의 모더니즘은 초기에는 영미 모더니즘의 모방의 냄새가 나지만 중기를 거쳐 후기 ‘백록담’(1941) 시대로 오면 동양적인 감각의 독특한 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의 시의 이 독특한 동양적인 감각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의 자연은 동화나 합일 같은 전통적인 자연이 아니라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두기를 통한 대상화된 자연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거나 배제한 채 자연을 관조하고 대상화하여 그것을 균제되고 즉물적인 감각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논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가 우리 현대시사에서 시적 정서와 언어에 대한 모던한 인식을 기반으로 그것을 한 극한까지 밀고 나간 최초의 시인이라는 점에서는 대부분 동의하리라고 본다.
정지용의 ‘유리창’은 시인의 이러한 모던한 감각으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시이다. 이 시의 모던함은 우선 감정을 절제하고 단련하는 방식에 있다.
그것은 ‘눈물을 비눗방울 날리듯 가볍게 날릴 수 있는’ 시인의 태도에서 기인하며, 그것의 구체적인 형상화 방식이 바로 ‘대위법’이다. ‘차가운 것과 슬픈 것’ ‘외로운 것과 황홀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각기 독립적인 정서가 하나의 선상에 놓임으로써 생경한 감정의 중화 내지 절제가 이루어진다.
감정의 대위법은 그의 시적 형상화 방식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하지만 그의 형상화의 탁월성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조형화하는 차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시를 보면 시인은 ‘창’을 통해 공간을 조형화한다. 창이 지상과 천상, 삶과 죽음, 소멸과 생성 사이에 놓임으로써 공간은 ‘어른거림’→‘파닥거림’→‘부딪침’→‘찢어짐’ 등의 아주 섬세한 파문과 균열을 통해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 공간의 조형이 빚어내는 순간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표현이 바로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이다.
그가 ‘유리창’에서 빚어내는 이러한 공간의 조형성과 대위적인 감각은 하나의 사물을 감각화하고 즉물화 내지 조형화하여 미적으로 형상화하는 모더니즘의 한 특장이다. 이것은 분명 우리 현대시에서 낯선 것이며, 그를 모더니즘의 기수로 혹은 실천자로 불리게 한 중대한 징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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