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의 눈물
권영국 목사 <새누리선교교회 담임>
나의 어머니는 10 남매를 낳으셔서 다섯은 땅에 묻고 다섯은 건지셨다
지난 9월 마흔다섯의 둘째아들을 여섯번째로 묻고 나서 어머니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셨다.
남동생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뒤 사흘 뒤에 장례식이 치려진 뒤에도 어머니는몸이 불편하셔서 동생집에 계셨다.장례식이 다 끝난뒤 온가족이 어머니 앞에 모였을 때에도 어머니는 동생이 병원에 있는줄로만 알고 계셨다.어느 누구도 동생의 죽음을 어머님께 말씀 드릴 수 없었다. 지난 10년간 몸이약했던 동생을 뒷바라지 해오신 어머니셨기 때문이었다.
결국 총대는 큰아들인 내가메었다.내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어머님께 동생의 죽음을 꺼내었을 때 어머니는 그대로 무너져 버리셨다.하염없이 우셨다. 두 여동생이 그렇게 달래어도 어머니의 울음은 멈추어 지지 않았다.
우시던 어머님이 갑자기 경끼를 일으키시며 입술이 떨리기 시작하셨다.모두가 당황했다. 그때 둘째 여동생이 내 무릎을 치면서 소리쳤다. 오빠 기도해! 얼떨결에 나는 어머니를 안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무너져 내리는 어머님을 안고 무슨 기도를 할 것인가.
그런데 갑자기 내 입에서 어머니에 대한 감사 기도가 터져나왔다. 하나님 아부지 이렇게 훌륭한 어머님을 저희들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어머님이 최고 이십니다. 우리 어머님 같으신 분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기도하던 내눈에서 주체할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어머니 얼굴 위에 마구 쏟아져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니의 울음이 멈쳐버렸다.큰아들의 뜨거운 눈물이 어머님을 놀라게 하셨던 것일까?어머니는 정신을 차리셨다.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마음을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젊은 날에 혼자 되셔서 평생 농사 지으시며 오남매를 키우셨다.그러니 어머니의 손은 내 발바닥 보다 더 험하셨다. 초등학교도 문간에 가보신 적이 없으시다.큰 아들이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초청하니 정든 고향떠나셔서 7 년간을 이국 땅에서 사셨고 그 땅에서 큰 아들이 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들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동생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닭고기를 밥상에 올리셨다. 몸이 약한 동생 먹이시려고 장터에서 장만하여 냉장고에 숨겨두었던 토종닭이라 하신다. 나는 동생이 먹어야할 그 토종닭을 어머니 앞에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이다음에 천국에서 동생 만나게 되면 그 토종닭 부터 먹일 작정이다. 토종닭 먹고 있던 아들 옆에서 어머니가 한마디 더 하셨다. 똑똑한 애들은 다 일찍 죽고 좀 모자라는 애들만 살아남드라.
보리밥은 아무리 먹어도 젖이 안나오는데 감자를 먹으면 젖이 나와. 니는 감자젖 먹고 컷다. 그 감자젖도 모자라서 니 바로 아래 여동생은 젖을 못먹어서 몸이 많이 약해.할머니가 손자에게만 젖을먹이라고 해서 그려셨단다.. 오남매는 감자젖을 먹고 자란게 아니었다. 가난한 엄마의 눈물을 먹고 자랐다.그래서 그렇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었다는 생각이든다.
하나님의 눈물이 엄마의 눈물이 되어 내 속에 흐르더니 이눈물이 넘쳐 목회지에 흘러 간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목사는 신도들에게 먹일 것이 없어 눈물만 흘릴 뿐인데. 신도들은 목사의 마음에 흐르는 그 예수님의 눈물을 먹으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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