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쪽에 사는 바스크 족은 유별난 종족이다. 유럽에 사는 대부분의 인종이 인도 유럽 어족 언어를 쓰고 있는데 바스크 족만은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바스크 어를 쓰고 있다. 인도 유럽어와 상관이 없을 뿐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와도 유사성을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언어학자들 가운데는 바스크 족이야말로 구석기 시대부터 유럽에 살던 원주민의 자손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이 바스크 족의 후예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체’(‘친구’라는 뜻) 게바라다.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바스크 족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꿈꾸었으나 대학 시절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일대를 여행한 후 원주민들의 열악한 삶을 보고 생각을 바꾼다. 이들이 이처럼 못 사는 것은 이들을 수탈하는 정치 경제 사회구조 때문이며 폭력으로 이를 바꾸지 않고는 이들로 하여금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 때 보고 느낀 바를 쓴 ‘모터사이클 일기’는 얼마 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과테말라로 가 ‘혁명 사업’을 시작한 그는 좌파 구스만 정권이 CIA의 지원 아래 감행된 쿠데타로 무너지는 것을 보고 쿠바로 건너가 산악 게릴라 지도자가 된다. 바티스타 정부군과 싸우며 보여준 과감성과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는 1959년 공산 혁명이 성공하자 카스트로에 이은 제2인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쿠바 혁명의 성공에 만족치 않고 이를 전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콩고로, 볼리비아로 뛰어다니며 게릴라 항쟁을 계속하다 1967년 10월 9일 CIA의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군에 의해 체포돼 처형된다.
그가 죽은 후 그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로 인식되면서 그의 주가는 치솟는다. 학생 운동과 게릴라 활동이 있는 곳이면 전 세계 어디고 그의 사진과 이름이 등장하는 ‘혁명의 마스코트’가 됐으며 대표적인 공산주의 지식인 사르트르는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 혁명아의 이면에는 잔혹함과 독선이 숨어 있다는 지적도 많다. 그는 쿠바 혁명 직후 정치범 수용소인 라 카바나 감옥 소장을 맡으면서 수백 명의 수감자를 증거도 없이 즉결처분했다. 6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핵미사일을 쿠바에 들여놓는데 앞장섰던 그는 “쿠바가 미사일 통제권을 갖는다면 미국 대도시를 향해 발사할 것”이라고 공언하는가 하면 평양을 방문해서는 “북한이야말로 쿠바가 지향해야 할 나라”라고 주장했다.
이런 결점에도 불구하고 최근 남미의 반미 바람과 함께 그의 인기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반미의 기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체’가 그려진 T셔츠를 단골로 입고 다니며 일부 원주민들은 그의 초상을 병을 낫게 하는 힘을 가진 부적으로 쓰고 있다. 사망 40주년을 맞아 의사에서 게릴라로, 정치범 수용소장으로, 좌파와 원주민의 수호 성자로 변신한 그의 인생 유전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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