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진 뒤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던 나라들 사이 인종 분규가 그치지 않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995년 7월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카에서 벌어진 세르비아 군의 보스니아 난민 학살 사건이다. ‘전갈’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세르비아 민병대는 군과 함께 이 지역 남성 8,000명을 죽였다. 세르비아 군은 4만 명에 달하는 이곳 회교도들을 멸종시키기로 마음먹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남성을 잡아 발가벗기고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제2차 대전 종전 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학살인 이 사건은 보스니아 사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세계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클린턴은 나토 공군으로 하여금 세르비아를 폭격하게 한다. 그 결과 세르비아가 백기를 들고 나토군이 주둔하면서 오랜 전쟁에 시달리던 발칸 반도에 평화가 찾아왔다. 인종 학살의 주범 슬로보단 밀로세비치는 2001년 체포돼 결국감옥에서 죽었다.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미국의 유고슬라비아 내전 개입이 이슈가 되자 앞장 서 반대한 사람이 있었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분규에 말려들어 ‘국가 만들기’(nation building)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2001년 9/11 사태가 터지자 그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무너뜨린 데 이어 아예 이라크까지 쳐들어가 이 나라를 새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또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작은 정부’를 주창한 레이건 대통령 신봉자였다. 캠페인 기간 내내 자신이 레이건의 적자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 이후 연방 정부 예산은 급속히 늘어났다. 두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감세에다 이라크, 아프간 전에 따른 국방비 증가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도 연방 의회가 예산안에 쑤셔 넣은 소위 선심성 지출에 그는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 미국의 국채는 9조 달러가 넘는다. 국민 1인당 3만 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보다 놀라운 변신은 북한에 대한 그의 태도다. 2002년 그는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라고 부르고 클린턴의 대북 유화 정책을 극렬히 비난했다.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수출을 막기 위한 ‘확산 방지 구상’(PSI)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북한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2004년에는 북한 인권법이 제정돼 인권 대사가 임명되고 탈북자를 미국에 수용하는 길까지 열어놨다. 그러나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법에 따라 미국에 사는 혜택을 누리고 있는 탈북자는 거의 없다. PSI를 구상한 장본인도 부시 행정부를 떠났고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 존 볼튼 전 유엔 대사는 틈만 나면 부시 행정부를 성토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 핵 폐기를 목적으로 한 6자 회담이 타결됐다. 미국은 이 회담 성공을 위해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 구좌에 들어 있던 북한 불법 자금을 돌려주고 핵 폐기 전 원조는 불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뒤엎고 2,500만 달러의 중유를 지원키로 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시리아에 핵 물질을 이전한 것이 거의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북한은 어떤 물질을 이전했는지 밝히라 한마디하고는 못 본 척 하고 오히려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빼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 지나친 대북 강경 정책에 반대, 옷을 벗은 잭 프리처드 전 대북 특사는 이제 북한은 외교적 성공을 간절히 원하는 부시 행정부의 약점을 잡고 어떤 양보도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적을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부시 집권 직후 그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날마다 퍼붓던 친북 좌파 매체들의 아우성은 쏙 들어가고 그의 지지자들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원칙 없이 갈팡질팡 하는 부시의 모습이 안쓰럽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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