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황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다.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명색은 초대 천황 짐무가 태양신 아미테라스의 후손인 것으로 돼 있다. ‘만세일계’를 부르짖으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본 황실은 단일 가문이 대를 이어 내려온 것처럼 전해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문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던 한국인들은 일본인과 똑같이 이를 진실로 믿고 밤낮으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그러지 않을 때는 가혹한 고문, 투옥 등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처벌이 가해졌다. 아직도 대다수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천황 신궁을 방문, 방명록에 ‘일본인의 행복이 나오는 천황의 신궁’이라 쓰고 천황의 만수무강을 빌었다면 한국 국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쓰라린 과거를 잊고 한일 간의 우호 관계를 다지기 위한 외교적 발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면 아직도 정신대 문제에 대한 공식적 사과나 배상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간과한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판받아야 할까.
지금 지구상에서 ‘만세일계’ 천황 일가에 대한 충성을 근간으로 하는 ‘덴노(천황) 파시즘’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북한이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3대째 권력 세습 작업이 진행 중에 있고 이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는 철저히 봉쇄돼 있다. 일본 파시즘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에도 체제에 비판적인 일본인들을 수용하기 위한 강제 수용소는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현 북한 체제는 천황제 파시즘보다 더 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 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1950년 김일성이 일으킨 6.25 사변으로 41만 명의 무고한 한국인이 사망하고 42만 명이 부상당했다. 그 아들 김정일 집권 13년 동안 2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했고 지금도 20여만 명의 탈북자들이 만주를 떠돌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지금까지 아무런 사과도 사실 인정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국회 의사당 격인 만수대 의사당을 방문,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는 글을 적고 환영 만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북한) 인민들도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북한이 실은 김정일 주권 국가이고 그 치하에서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를 설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독설가 앰브로즈 비어스는 “외교는 나라를 위해 거짓말하는 애국적인 기술”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노 대통령도 자신의 행동이 외교 행위였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거짓말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한다. 히틀러의 본거지를 찾아가 그곳이야말로 독일 국민의 행복이 나오는 곳이고 히틀러가 오래 살아야 독일 국민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이 뭐라 평하겠는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노 대통령은 더 이상 말실수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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