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제국주의, 혹은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의 불손함
미치너와 에드워드 사이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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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 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문화 이론가이자 비평가인 에드워드 사이(Edward W. Said)에 의하면 문화란, “여러가지 정치적, 이념적 명분들이 서로 뒤섞이는 일종의 극장”이다. 이러한 논리의 근저에는 제국적 대결과 점령이 실제적으로 지리학적 토대인 땅 즉, 영토적 영역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영역에 의해 더욱 효과적이며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바, 제국에서 수출되고 이식된 모든 문화는 제국의 권위와 지배적 권력이 살아있는 지극히 ‘문화적인’ 내러티브로서 식민지, 제 3 세계, 저개발국, 그리고 개발도상국을 총과 칼보다 우아하고 조용하게 잠식한다는 사실이 잠복해 있다.
결국, 20세기 이후로 문화란, 저강도 정책이라는 정치학적 신조어의 협조자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의 문제, 정치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 제국주의적 권력으로서의 문화라는 상품의 한 가운데에 헐리우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요나라>로 아시아 배우 중에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우메키 미요시가 지난 8월28일 향년 78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가 신문의 한 면을 장식했다. 우리는 이 단신 기사 속에 잠복한 교묘하고 불손한 하나의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사요나라>가 어떤 영화인가. 제임스 A. 미치너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사요나라>는 제 2차 세계 대전 말기의 점령지 일본을 배경으로 한 <나비부인>의 필름 버젼에 다름 아닌 것.
한국전에 참전해 뛰어난 공로를 인정받아 전쟁영웅으로 칭송받는 미 공군의 엘리트 로이드(말론 브란도 분) 소령은 점령지인 일본 가베로 전출된다. 적어도 로이드 소령의 전출 초기는 부하 켈리와 일본 여인의 결혼을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드러내는 등, 이성적 제국주의자의 일반적 시선을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츠바야시 극단 최고의 스타 하나오기를 만나는 시점으로부터 일종의 전도된 양상의 제국주의, 즉 피지배국에 대한 불순한 이미지의 조합들에 의해 생성된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시각으로서, 사이드식으로 말하자면 지극한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2.
“사랑은 국가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다”는 무척 코스모폴리탄적인 주제의식으로 교묘히 위장한 영화 <사요나라>는 서구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동양, 즉 ‘오리엔탈리즘’의 교과서적 영상 재현물이다.
그들은 마치 “사랑을 위해 살다”라는 경구를 재현하기 위해 만나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듯이, ‘사랑’ 속에 정열적으로 투신한다. 그리고 영화는, 가끔식 그들의 생뚱맞은 ‘사랑’은 섬나라 일본의 무척 프레샤야스하고, 신혼 여행지 발리와 식민지 시대의 세련된 사이공을 옮겨놓은 듯 아름다운 비주얼로 인해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텍스트가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시대적, 공간적 맥락이 소멸한 영화 <사요나라> 속에서의 개인사들의 낭만적 겹침은 역사의 냉엄한 시선을 항상 비껴간다. <남태평양>과 <사요나라>와 <하와이>에서 보여주는 미군병사들의 천진난만한 질탕함은 미지의 섬나라가 상징하는 파라다이스 이미지와 결합하여 지배와 피지배, 선민의식과 죄의식,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차별성을 감쪽 같이 사라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기든스가 말하는 이른바 ‘낭만적 사랑’은 비극적 내러티브의 정점으로 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데, 언제나 미군 장교를 ‘비극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동양의 여인들은 사생아를 낳고 홀로 남겨지거나, 자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동양문화의 상징으로서의 동양여자가 미군의 고향집 앞마당 즉, 제국주의 본국, 그 문화적 영토에 감히 발을 드밀 수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피식민지 지역 주민들은 정치, 경제적 면에서 뿐 아니라 근원적인 문화 심리적 차원에 걸쳐 더욱 다양하고 철저하게 제국에 의해 타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의 확인에 다름 아니다.
주지하듯, 미군장교와 일본 여자의 사랑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처럼, 마르코 폴로시대 이후로 쭉 서구문화가 상상해 온 동양에 대한 불손한 이미지의 철지난 성적 조합물이다. 문화적 텍스트 속에서 서양은 언제나 강하고 이지적이며,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남성 이미지로 재현되며, 동양은 순종적이고 연약하며, 감정적이고 내면적인 여성 이미지로 재현된다. 그러므로 동양은 언제나 서양의 힘 앞에 의존적이고 복종적일 수밖에 없다.
우메키 미요시가 <사요나라>에서, 사랑하는 미군과의 이별을 거부하고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비련의 현지처 역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의 핵심에는 어쩐지 껄끄러운 혐의가 남아 있는 듯하다.
약간 투박하게 표현해, <사요나라> 속 우메키와 하나오기 등 여성 인물들의 이미지는 제국이 여성 피사체를 통해 투사하고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이자, 중첩되고 혼효된 인종, 성, 계급, 역사적 차원의 복잡성과 식민성의 축약판, 상징적 기호에 다름 아니다.
이때, 여성인물들의 육체는 농촌/도시, 전통/근대, 사적/공적, 여성/남성, 가난/부강, 민족적/제국주의적 등, 갈등하는 이항대립적인 가치들이 경합하는 영역으로 탄생하며, 후진적인 작은 섬나라 혹은 미지의 동양에 대해 막강한 부와 권력으로서 근대성과 자주의 문화를 이식하는 제국의 협조자로 형상화 된다.
엘레 쇼하(Ellea Shoha)는 이러한 성적 코드의 사용을 통해 재현되는 제국-피식민지 관계를 일컬어, 동양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욕망과 상상력이 거칠게 표현된 하나의 음각화(陰刻畵), 혹은 네거티브 필름이라고 단정했다.
이렇게 본다면, 제국의 문화, 서구문화가 재현한 동양여자로서, 서구문화가 꿈꾸는 동양성(性)의 근사치를 연기한 우메코의 수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3.
우리는 왜, 단순한 하나의 사건을 ‘그저 사건’으로 바라보는 순진성을 경계해야만 하는가. 이유란 바로, 문화와 제국주의 간의 그 긴밀한 상관관계, 무척이나 비정치적으로 보이는 문화 지형 속에 숨은 수많은 정신적 침탈과 정서적 침략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이드는 묻는다. “제국주의는 절대적으로 경제적인 것인가?”라고.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의 논리를 빌어 본다면, “제국주의란 무력에 의해서, 정치적 협상에 의해서, 또는 경제적, 사회적, 무엇보다도 문화적 의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치너의 일련의 동양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과, <사요나라>, <남태평양>, <하와이> 같은 1950년대 헐리우드에서 생산된 필름들은 일종의 제국주의적 문화상품들로서 제국의 욕망과 꿈의 적극적 반영물이다. 이러한 문화적 상품들은 식민지인들의 제국에 대한 분노를 희석하고, 제국의 침탈을 합리화하는데 동조하게 하며, 심지어 제국에 대한 향수를 전염시키고 고유문화를 오염시킨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제국의 상상력을 길러낸 문화적 텍스트를 아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
죠수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는 그의 저서 <담론:Discourse>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국의 기초는 예술과 과학이다.”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자국의 과학적 우세를 내세워 일명 ‘위생 제국주의’ 정책으로 그들의 제국주의적 침탈과 조선의 식민지화를 합리화 했으며, 영국인들은 세익스피어를 앞세운 도덕적 우월주의와 문화적 선민의식으로 인도를 식민지화했다.
문화는, 단지 보고, 듣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순수한 소모품이 더이상 아니다. 이제,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시집과 한 벌의 청바지 속에 숨은 문화적 콘텍스트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비판하는 무척 깐깐한 문화 소비자가 되어 볼 일이다.
<정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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