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건국의 아버지’들은 버지니아의 대농장 지주(조지 워싱턴)부터, 보스턴의 인권 변호사(존 애덤스), 자수성가한 필라델피아의 출판업자(벤저민 프랭클린) 등 다양한 계층 출신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을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이 하나 있다. 정부 권력에 대한 심한 불신이다.
영국 치하에서 국왕과 의회의 횡포에 시달린 이들은 새로운 나라 미국에서는 결코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정부의 힘을 최소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781년 독립전쟁이 사실상 끝난 후부터 1787년 연방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미국을 다스린 중앙 정부(Congress of the Confederation)는 역사상 드물게 힘없는 정부였다. 주정부 연합체로 독자적인 조세권도 징병권도 없는 이 정부의 무능이 ‘셰이의 농민 반란’등 사건으로 드러나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여론이 일었고 헌법 제정을 통해 현재의 연방 정부가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생긴 뒤에도 강한 정부에 반대하는 소위 ‘반 연방주의자’(anti-federalist)의 반발이 그치지 않았고 이들을 무마하기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한 10개의 수정 헌법안이 마련됐다. 새 정부가 효과적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필요했지만 이 또한 정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준다는 이유로 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1791~1811년, 1816~1836년 두 차례에 걸쳐 중앙은행이 세워졌지만 ‘보통 사람들의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미국은 서양 각국 중 드물게 오랜 기간 동안 중앙은행 없는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19세기말 1873년, 1893년, 1907년 등 거듭된 금융 공황으로 중앙은행 발족의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되면서 1913년에야 가까스로 지금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탄생하게 된다. FRB는 12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7명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5명은 지역 연방 은행 대표 중에서 뽑힌다. 이 지역 은행은 반민 반관 형태로 미국의 중앙은행은 순수 정부 기관이 아니란 점이 특색이다.
FRB의 최대 임무는 통화량 조절이다. 경제 규모에 맞는 적절한 통화량을 공급함으로써 기업의 자금줄이 막히거나 통화 남발로 인플레가 창궐하는 것을 막는 것이 존재 이유다. “파티가 무르익어 갈 때 펀치 보울을 뺏는” 식으로 경기가 과열되면 돈줄을 죄고 좀 둔화된다 싶으면 푸는 것이 하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수단이 이자율 조정이다. 이에 따라 모든 미국 기업과 가계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얼핏 막강해 보이는 FRB의 금리 조정 권한도 사실은 허장성세인 경우가 많다. 제아무리 FRB라 할지라도 시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금리를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플레가 두 자리 수를 치닫고 있는데 이자를 내려 돈을 마구 푸는 FRB 의장은 없다.
FRB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전에 봐야 할 것이 있다. 3개월 만기 연방 채권 수익률이다. 채권 수익률은 FRB가 정하는 연방 기금 금리나 재할인율과는 달리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정해진다. 시장이 볼 때 인플레 우려가 높으면 올라가고 경기 둔화 조짐이 보이면 내려간다. 지난 수년간의 수익률 동향을 보면 FRB의 결정을 정확히 점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RB는 지난 주 연방 기금 금리를 0.5% 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큰 폭에 놀라고 있지만 연방 채권 수익률 도표를 보면 놀랄 일이 아니다. 채권 시장은 이미 연방 기금 금리가 3%대로 떨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FRB가 잠재적인 인플레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폭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은 경기 둔화를 예고하는 시장의 메시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주택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의 도래를 막기에 충분한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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