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서쪽
최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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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물의 말’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박정애 씨의 소설 ‘에덴의 서쪽’은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윤지가 자신이 미혼모가 되어서야 일자무식 맨몸뚱이로 자식들을 건사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어머니, 똥님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는, 두 모녀의 삶을 통해 한국 여성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그린 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에서 비롯된 소설 제목 ‘에덴의 서쪽’은 카인과 아벨로 시작되는 남성 계보의 반대편, 아버지의 율법인 남성 위주 가부장 제도에서 벗어나 자매애와 모성애로 이루어진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한 여성들의 꿈과 어머니와 딸들의 나라, 여성의 역사를 상징하고 있다.
이 소설은 가난한 집 딸로 논 두 마지기에 늙은 신랑의 재취로 팔려온 똥님과 고등교육까지 받고도 집안의 강요로 시집온 동서 예설영, 이 두 여자가 고색창연한 기와 돌담에 둘러쌓인 동굴같은 시집살이에서 탈출을 감행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자 집안의 반대로 새로운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은 예설영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 윤지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 두번째 남편의 엽색 행각에서 다시 탈출하여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건사한 똥님의 고단한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머니가 벌어온 밥을 먹고 걸레질한 방에 누우면서도, 밝은 인식의 광채를 지니지 못한 무지한 어머니와 자신은 질적으로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를 한번도 어머니와 연결짓지 않고 남자의 가치관과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던 윤지는 미혼모가 되어서야 그녀 안에 언제나 있었던 자궁, 어머니를 발견함과 동시에 자신을 낳고 기른 억척스러운 엄마 똥님을 다시 보게 되고, 비루한 삶을 살았던 그녀와 화해한다.
그녀의 다른 소설 ‘물의 말’에도 여자로서 겪는 갖가지 구조적 폭력에 지친 여자들이 등장하며, 질긴 여성적 생명력을 지닌 ‘님이’가 하나뿐인 딸을 잃고 고통과 슬픔의 물인 눈물로써 온 몸이 물이 되어 ‘물의 말’을 한다.
권 약사의 아들을 낳기 위해 후처로 들어간 님이와 아버지 권 약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신의 여성성을 미워하다 자살한 그녀의 딸 필남, 남편의 폭력과 가난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맨 그녀의 언니 연이,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려는 희생적인 슈퍼우먼이지만 남편의 바람기로 고통받다 이혼하는 권 약사의 재능있는 딸 예지를 통해 남자들이 건설하는 세계의 뒷전에서 대를 이어 반복되는, 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상처와 억압들이 이 소설의 축을 이루고 있다.
벗어나려 했으나 끝내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을 키우고 성장시켰던 탯줄이 어머니로부터 그 딸로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선이었음을…. 성씨로도 묶이지 않고 배타적 혈족 공동체에 속하지도 않고, 족보에서도 단절적인 어머니와 딸들은 물과 피가 흐르는 생명의 장소에서 생명의 장소로 연결되는 가장 친밀한 존재임을 물과 피로 젖은 병원의 시트 위에서야 깨달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렇게 그녀의 이 두 작품들은 어머니와 딸들로 이어져서 쓰여지는 여성의 역사 원리가 남성의 역사와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를, 그리고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성과 ‘모성’을 이해하고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고민하지 않고는 여성 문제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유교적 가부장 제도가 몇백년 동안 여자를 억압했던 한국의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신의 딸들에게 너는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했으며, 얼마나 많은 딸들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가….
인간이 쫓겨난 이상향인 에덴은 동쪽도 서쪽도 없는, 가부장 제도도 모계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 남자와 여자가 창조주의 율법 안, 죄에서 자유로운 평화롭고 완전한 사랑의 세계였다. 에덴이 해가 떠오르는 동쪽과 볕이 들지 않는 서쪽으로 나뉘는 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이 누군가에게 억압되고 눈물 흘리는 한, 우리에게 에덴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먼 이상향일 것이다. 남자들이 꼭 읽어봤으면 싶은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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