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어 긴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두달 반 동안의 방학을 마치고 다시 새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철저한 마음의 준비와 확실한 계획이 필요하지만, 때로는 마음이 게을러지고 학생들 가르치는데 지쳐서 그런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싫을 때가 있다.
매일 150명이 넘는 시끄럽고 말 안 듣는 10대들에게 시달리며, 학교 조직 내 스트레스를 생각 하면 힘이 쭉 빠지고 차라리 다른 조용한 직업을 찾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고무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을 회상한다. 2학년 때 구구단을 잘 못 외워서 부모님 불러 오라시던 이 선생님, 6학년 학생들에게 대학시절 데모하며 부르던 데모 송을 가르쳐 주시던 정 선생님, 그리고 미국에서는 ESL을 담당하신 젊고 힘이 넘치던 미스 프리스 등 너무도 많은 좋은 선생님들이 나를 가르쳐 주셨다. 그중에 내 마음에 가장 깊이 감명을 준 선생님은 칼스테이트 롱비치에서 합창단을 지휘하시던 비에레펠트 박사였다.
그분을 처음 만날 당시 나는 재즈와 팝 음악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활짝 웃으면서 “너는 언젠가 훌륭한 지휘자가 될거야” 라며 격려하셨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그분은 그후 만날 때마다 나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셨다.
나는 그 선생님이 너무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분이 ‘착한 척’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항상 누구를 대하든지 친절하고 따스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그분의 의도를 의심할 수 없었다.
비에레펠트 박사를 만나고 1년 후 그분이 지휘하는 채임버 합창단에 들어가 2년간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음악의 대한 것도 많이 배웠지만 더 중요한, 인간으로서 또 선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 주셨다. 그 이년 동안 비에레펠트 박사는 두번째 유방암에 걸려 수술과 화학치료를 받으면서도 힘들고 아픈 티를 내지 않고 합창단을 이끄셨다.
아픈 몸을 가지고도 합창단의 녹음을 끝내야 한다며 밤 11시까지 연습하고 녹음한 적도 있고, 머리가 다 빠져서 가발을 쓰고 가르치시다가 머리가 답답하다고 가발을 벗어 던지시던 시원 신원한 성격도 생각난다.
안타깝게도 6년전 세번째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는데, 그 소식을 듣고 선생님이 가르치셨던 학생들 90여명이 모여서 그를 위해 감동적인 기념공연을 올렸다. 기념공연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그 선생님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 공연이 끝난 지 두달 후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은 51세의 젊은 나이로 조용히 돌아 가셨다. 놀라운 사실은 돌아가시기 2주전까지 고등학생들을 위한 여름 합창 캠프에서 산소통을 끌고 다니며 지휘를 하셨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아픔과 어려움을 제쳐놓고 단 한명이라도 더 가르치려는 학생들을 위한 열의는 그를 만나지 못한 사람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지 10년이 넘지만 비에레펠트 박사가 내 마음에 심어주신 음악과 학생들을 위한 열성은 아직 식지 않았다. 아무리 학생들이 어려움을 주더라도 산소통을 끌고 다니며 지휘를 하시던 나의 스승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해 가르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도 언젠가는 산소통을 끌고 다니며 가르칠 정도로 학생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으면 한다.
서재필 / 벨플라워 중학교 합창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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