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로퓨모는 2차대전 때 종횡무진 활약한 영국의 전쟁영웅이었다. 핸섬한 외모에 좋은 집안, 그리고 아름다운 부인 등 뛰어난 조건을 두루 갖춘 프로퓨모는 최연소로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단숨에 영국 ‘정계의 스타’로 뛰어 올랐다. 1960년 44세의 나이로 보수당 맥밀란 정권의 육군장관을 맡을 무렵 그는 차기 총리감으로 정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돼 있었다.
그런 그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단초가 된 것은 1961년 19세의 ‘화류계 스타’크리스틴 킬러와의 만남이었다. 킬러에 홀딱 빠진 프로퓨모는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가 킬러가 주영 소련대사관 무관과도 내연의 사이임을 정보 당국으로부터 전해 듣고 서둘러 관계를 정리한다.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듬해 킬러가 다른 사건에 연루되면서 프로퓨모와 소련 무관 등 킬러가 관계한 인사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야당이 이를 정치 쟁점화하면서 프로퓨모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것은 그가 킬러와 가졌던 관계 자체가 아니라 그가 의회 청문회에서 이 사실을 부인했다가 나중에 들통 났다는 사실이었다. 거짓말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아 프로퓨모는 장관직에서 사퇴해야 했으며 보수당 정권의 몰락까지 초래했다. 프로퓨모의 몰락에 대해 영국 첩보국의 개입설 등 다양한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권력과 섹스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권력에 접근하기 위한 도구로 섹스를 이용한 사람들도 있고 섹스를 얻기 위해 가진 힘을 행사한 권력자들도 많다. 직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의 한 잡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성인 남녀 4명 중 1명(남성 25%, 여성 26%)이 출세를 위해 잠자리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들 중 남성 19%, 여성 23%는 잠자리를 한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요즘 한국사회는 온통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학력위조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신정아씨간의 ‘부적절한 관계’로 들끓고 있다. 하지만 관계 그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부적절한 관계’가‘부적절한 거래’로 연결됐는지와 변씨의 거짓말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좀 더 정확한 사실 관계가 드러나겠지만 변씨와 신씨간의 관계가 거래 형태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크다. 왜냐하면 주고받는 것은 그것이 물건이든 감정이든, 아니면 또 다른 어느 것이든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채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일단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면 상대 기대를 허물어뜨리지 않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그래서 열심히 청탁도 들어주고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변씨뿐인가 아니면 다른 윗선이 있는가”를 놓고 추측과 소문이 무성한데 여하튼 신정아씨가 ‘거래의 심리학’을 꿰뚫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 후 프로퓨모는 어떻게 됐을까.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진 프로퓨모는 지난해 사망할 때까지 40년 넘게 부인과 함께 런던 빈민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그의 봉사에 감명 받은 여왕이 직접 그를 찾아갔다. 여왕이 “이제 충분한 속죄를 한 것 아닙니까”라고 묻자 그는 “비록 세상이 나를 용서해 준다 해도 나는 거짓말을 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 대답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매일 스스로를 용서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에게 프로퓨모는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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