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다. 분만 시간은 지나고 산모와 의사들도 최선을 다 했는데 쌍둥이 태아들이 나오지를 않았다. 다급해진 의사는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배를 열어보니 쌍둥이 태아들이 서로 “after you!를 연발하면서 형의 자리를 양보하고 있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영어를 배웠을 리도 없으니 아마 꾸며낸 이야기일 것이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는 먼저 태어나지 못한 야곱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역사상 가장 희한한 출산이기도 한 이 이야기는 양보가 없는 처절한 자리다툼의 원형이 되었다. 갈등이나 투쟁보다는 양보가 백번 낫다. 양보란 단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이지 무턱대고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물러섬은 양편에 모두 이롭지 못한다.
예언자적 사상가인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는 1745년 벨기에의 펀트노아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루이 15세가 통치하던 때, 색슨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펀트노아에서 영국군과 대치했다. 적을 사이에 두고 50m 근거리에 도착하자 영국군 장교인 로드헤이가 모자를 벗고 대열에서 나와 프랑스군을 향해 “after you, Mr. French!”(프랑스 병사들이여, 먼저 쏘시지요!) 라고 정중히 말했다. 그러자 프랑스군의 지휘관인 단테롯슈 백작이 나와 화답했다. “Apres-vous, monsieur Anglais!”( 영국 신사들이여, 먼저 쏘시지요!) 서로 사격권을 양보한 것이다. 결국 먼저 사격을 시작한 프랑스군이 영국, 네델란드, 하노버,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을 격파했다.
참으로 오래 전의 이야기다. 후라이보이 곽규석 씨와 뚱뚱이 구봉서 씨가 농심 라면을 선전하는 장면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 한 그릇을 놓고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며 양보를 했다. 서로 그릇을 밀치며 양보하던 모습이 얼마간 반복된 후에 “그럼 제가 먼저!” 하고 아우 역의 곽규석 씨가 라면 그릇을 당겨 젓가락질을 했다. 이내 후회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우의 먹는 모습을 쳐다보던 형 역의 구봉서 씨를 클로즈업시키면서 그 광고는 끝이 났다. 양보 이면에 가려진 사람들의 본디 모습을 잘 보여주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지나친 양보, 마음에도 없는 양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적당한 양보가 모두를 위해 좋다. 양보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유교에서는 군자가 세상에 나아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다섯을 꼽았다. 온(溫)은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한 자세다. 량(良)은 불의를 멀리 하고 정의를 가까이 하는 어질고 양심적인 자세다. 공(恭)은 겸손한 자세다. 검(儉)은 검소한 생활이다. 양(讓)은 양보하고 희생하는 자세다. 양보심을 미덕 중의 미덕으로 보았다. 양보심은 참으로 아름다운 품성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조카에게 모든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양보했다. 양보(讓步)는 말 그대로 한두 걸음, 혹은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각박해진다. 살벌함이 처처에 넘쳐나고 성공을 위한 무한경쟁의 환경에서 사람들은 쉽게 양보하려 들지를 않는다. 우리의 양보심은 메말라가고 있다. 거목이 쓰러지면 말라죽은 고목(枯木)이 된다. 고목에서 자라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푸른 이끼다. 이 스러져가는 양보심을 되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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